현장에서 만난 우수 후계농업경영인

[한국농어민신문 이강산 기자] 

장차익 한농연 여수시연합회장이 화양면 농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차익 한농연 여수시연합회장이 화양면 농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들과 함께 수도작·번식우 사육
중기회사도 운영하며 기반 탄탄

31살 나이에 ‘이장’ 맡고부터
‘공동의 이익’ 실현 경험 밑거름
한농연 활동에도 적극 동참

정부, 농가 경영안정장치 구축
중소농 생존정책 마련 시급

“한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조직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3년 동안 여수시 회장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 

지난 1월 26일 제14대 한농연 여수시연합회장에 취임한 장차익 회장(54)은 한농연의 농업 농촌 생존을 위한 투쟁 때마다 가장 앞에서 현장을 지켜온 열렬한 한농연 회원이다.

순박한 얼굴에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지만 오랜 농권 운동과 철강 및 건설 현장 경험에서 다져진 강력한 카리스마의 반전 매력 소유자, 장차익 회장의 인생 스토리를 취재했다.

장차익 회장은 여수시 화양면에서 아들과 함께 수도작 13만2000㎡(4만평)와 번식우 10두 사육을 통해 연 1억원의 조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한 중기 회사를 운영하며 지역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는 여수공고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여천산단과 광양제철, 한보철강에서 20대를 보냈다. 

90년대 초중반 경기 호황 기간 철강업계에서 6년 동안 안정적인 직장인 생활을 했지만, 1998년 IMF와 함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귀향을 선택했다. 

1999년 후계자에 선정돼 받은 후계자금 5000만원으로 논 5940㎡(1800평)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장차익 회장은 여러 차례 농업소득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밭작물 재배를 시도했지만, 현재는 수도작에만 집중하고 있다. 

“여수시는 전남의 타 시군보다 경지면적이 작아 인력 부족 문제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빨랐다. 10년 전부터 밭농사는 배제하고 수도작을 중심으로 한우 사육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차익 회장이 농권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1년 31살에 마을 이장을 하면서다. 당시 전남도 보급사업으로 추진하던 친환경농업을 여수시 최초로 마을에 도입해 시행하고, 2002년과 2003년 태풍 루사와 매미에 큰 피해가 발생한 마을을 위해 배수 개선 사업을 건의·추진한 것.

“한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공동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험이 한농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됐다”면서 “지방 소멸 위기와 농업 분야 영향력 약화 등 주변 환경 변화와 관련해 한농연도 미래 농권 운동 방향에 대해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장차익 회장은 현재 정부 농업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금 정부의 농업정책은 직불금 등 대농들만을 위한 정책으로 가고 있다”면서 “농업인은 본인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농산물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안법 개정 등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 구축을 통해 중소농들이 생존할 수 있는 정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청년농 육성과 관련해 “제가 처음 논을 구입할 때 평당 2만5000원이었지만 지금은 30만원이 넘어 청년들의 농업 분야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졌다”면서 “청년 농업인이 수억원의 부채를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임대 이후 농지 이양으로 이어지는 사업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2024년은 장차익 회장에서 새로운 도전의 해다. 한농연 여수시연합회 회장으로서 3년 임기를 시작하는 해이자, 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아들과 함께 육묘장과 건조 시설을 신축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장차익 회장은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일들이 있지만 아내와 딸, 아들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회장에 취임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3년 동안 한농연 여수시 회장으로 회원과 농업 농촌의 권익 대변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여수=이강산 기자 leek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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