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농업 이어갈 수 있게…최저 가격 보장을”

[한국농어민신문 이강산 기자] 

귀향 후 농사 5년 만에 빚만 2억
‘소 파동’ 때 되레 규모 늘려 갚아

현재 60두 유지, 벼도 3만5000평
모든 것 희생한 아내 덕에 가능

쌀 기부·자원봉사 참여 등 열심
농업 나아가야할 방향도 고민

이연수(한농연 장성군연합회장)·강은영 부부가 5일 모내기 중 이양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수(한농연 장성군연합회장)·강은영 부부가 5일 모내기 중 이양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남 최북단에 위치한 장성군은 전라북도 정읍시·고창군, 전남 함평·영광·담양군, 광주광역시와 맞닿아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필암서원·고산서원 등 서원이 많아 학문과 선비의 고장이라 불린다. 2021년 취임해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장성군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이연수 회장(59)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지역 선·후배가 융화되도록 조직을 이끌면서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서 30년째 고향을 지키며 복합영농을 하고 있는 이연수 회장의 인생이야기를 취재했다.

장성군 북이면에서 농업인 부모님의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이연수 회장이 처음부터 농업인의 길을 가려고 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의경으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88년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기계설비회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월급으로 43만원을 받았을 만큼 당시로서는 좋은 대우였지만 인문계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성과를 인정해 주지 않는 회사에 실망해 퇴사를 결심했다. 이후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도시 생활과 사람에 실망한 그는 귀향을 결심한다.

이 회장은 과거 회사생활을 떠올리며 “적당히 윗사람한테 아부도 하고 잘못된 것도 눈감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런 걸 잘 못한다”면서 “농사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필요가 없다”며 농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연수 회장은 농업인의 길을 가고자 결심하고 농업을 바로 알기 위해 1992년부터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1년 후배로 만난 화순 출신 아내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이연수 회장을 믿고 1994년 평생 동반자가 됐다.

논 6000평과 한우 15두로 시작한 농사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농기계 구입과 생활자금으로 빚은 늘어갔다. 1995년 후계자에 선정돼 받은 1800만원의 자금은 경영비로 들어가고 남는 것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부지런히 일했지만, 농사 5년째인 2000년이 됐을 때 빚이 2억원에 육박했다.

이연수 회장은 “당시에 그때까지 해 온 것을 돌아보면서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일만 해서는 시골에서 2억이라는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당시 모을 수 있는 돈을 모두 끌어 모아 소 입식을 선택했다”고 회상했다. 2000년대 초반 소 파동이 일어나 다른 농가들이 소를 앞다퉈 내놓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반대로 낮은 가격에 송아지 22마리를 구입해 축사 규모를 늘려갔다.

이 회장은 “요즘 뉴스에서 부동산 영끌이라는 말을 쓰는데 당시 거의 도박과도 같은 줄타기를 했다”면서 “소 입식 이후 가격이 계속 올라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최대 120두까지 늘어났던 축사는 현재 60두 수준으로 안정됐고 논 3만5000평에서 벼를 재배하고 있다. 몇 차례 사과· 자두 등 과수 재배에도 도전했으나 축사와 수도작 등을 병행해야 하는 환경에 꾸준한 관리가 어려워 포기했다.

이연수 회장은 농업인으로서 삶을 돌아보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네 명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면서 “화목한 가정을 위해 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아내 강은영 여사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며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연수 회장은 최근의 농업 현실에 대해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 이슈 때 여야 모두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열을 올렸지만 정작 농업인은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면서 “최소한 농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이 트랙터에 갈려 나가는 일이 없게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농촌지역에 홀로 사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는데 마을별 보육 인원을 양성해 건강 상태 및 영양상태 등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농촌 복지 향상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수 회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보육시설에 쌀을 기부하고 제초 작업을 지원하는 등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 지역사회 복지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앞으로 계획을 묻자 “우리 농업인이 스스로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떠한 자리든 봉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우리 농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스스로 더 고민하고 공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남=이강산 기자 leeks@ah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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