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억대 농부’로 우뚝

[한국농어민신문 최상기 기자] 

대기업 자리도 마다하고
고향서 축산으로 농업 시작
소파동 등 고생에도 좌절 없이
3만평 수도작에 고추 등 성공

동네 궂은 일 도맡는 재주꾼
만학도 모임서 학구열 불태워

한농연고흥군연합회장을 역임한 김영ㅅ
한농연고흥군연합회장을 역임한 김영삼 농업경영인이 고추밭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

“농업을 하면서 빚을 지지 않고 영농을 해왔다면 그건 분명 어디엔가 문제가 있었던지 아니면 소일거리 수준으로 해온 것이겠지요.”

대뜸 빚 문제부터 들고 나온 김영삼(60·고흥 도화면) 농업인의 말이다. 전남 고흥은 농업을 하기엔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명당지역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스마트팜의 메카로 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지원과 시설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분명 혜택 받은 지역이다. 많은 간척지가 농업인들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김영삼 농업인은 전형적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역에선 우수 인재로 성장했다. 그때 당시엔 인문계보다도 어렵다는 공고를 졸업해, 지역인재로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 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산업일꾼으로 전공을 살려 취업했다. 전남지역보다는 인력 수요가 필요하고 공업 분야가 발전한 경상도 지역에서 직장생활의 첫발을 우렁차게 내딛었다.

거론도 하고 싶지 않지만 지역적인 차별 문제로, 또 김영삼 대통령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적찮게 어려움을 겪었다고 실토한다. 오래 견디지 못하고 구미지역에서 인천으로 옮겨 안정적인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을 겪었다.

남자 인생의 한 변곡점인 군입대를 계기로 그동안의 타지 생활을 접었다. 1986년 군 제대 후 언제나 포근하게 맞이해 주는 고향 고흥으로 복귀를 결심한다. 그는 공업 분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농업으로 바꾸는 계기가 바로 고향이었다고 소환했다.

그 무렵 공업 분야 대기업에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통보도 받았지만 고향 고흥에서 시작은 축산으로 시작했다. 공고를 졸업해서 후계자 자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점수 미달로 탈락를 거듭했다. 후계자 자금을 받기 위해 영농교육, 새농민기술대학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그 사이에 성급하게 빚을 내서 축사도 마련하고 후계자 자금을 받아 입식을 했다.

바로 그때 “소 값 파동으로 50만 원에 소를 구입해서 50만원 어치 사료를 먹여 100만 원을 받으면, 그것도 손해인데. 일 년 동안 먹여 키워서 적자를 보면서 팔아야 하는 아픈 시절에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연체는 또 연체를 낳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직면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은 정말 마음이 편하단다. “한때 무턱대고 덤빈 결과로 얻은 쓰디쓴 교훈을 이제야 모두에게 알릴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청년 농업인에게 철저한 계획과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단다. 두 번 다시 실패를 맛보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그동안 진 빚은 수도작을 통해서 모두 갚고, 이제부터 벌어들이는 것은 모두 재산이다. 지금은 3만 평의 수도작, 고추 농사, 지역 특산물인 취나물, 유채 농사를 하고 있다. 연 소득 1억 원은 거뜬하다고 자랑한다. 마을에선 거의 막둥이로 온 동네 온갖 잡일은 도맡아서 해주는 재주꾼이다.

한편으론 동네에서 인정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도 모르겠단다. 동네 막둥이에 재롱꾼으로 불린다. 지금도 도화고등학교 ‘만학도 모임’에서 전기기사, 중장비 운전 등 교육을 받고 있고, 시험을 앞두고 있다. 고흥에는 간척지가 많다. 지난해의 경우 고흥만 간척지를 한농연 이름으로 경작, 80ha의 면적에서 쌀농사를 지어 회관건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1억 2000만 원의 순소득을 올려 토지를 구입하는 데 보탰다.

한농연 고흥군연합회장, 조직의 장을 맡아 거둔 최대 성과라고 꼽는다. 매년 김장철이 되면 김장을 담궈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은 일상사다. 그는 평범하지 않게 어려움을 뚫고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한때는 떵떵거리며 앞날을 보지 못하고 걱정 없이 한량처럼 살기도 했다. 한마디로 ‘호사다마(好事多魔)’다.

그는 “새싹이 움트는 것을 보고 한없이 농업을 동경했다”며 “농업인이 걱정 없이 잘사는 그 날이 바로 내일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업인은 희망과 미래를 지나간 과거가 아닌 앞날에서 밝혀야 한다는 꿈을 오늘도 가슴속에 심고 있다. 그는 영원한 현역이자 ‘끝’없는 농업경영인이다.

고흥= 최상기 기자 choisk@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