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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우수농업경영인 <51>김순재 창원 동읍농협 전 조합장협동조합 개혁 전문가로 맹활약

[한국농어민신문 구자룡 기자]

▲ 김순재 동읍농협 전 조합장이 농협개혁전문가에서 ‘을’들의 미소를 지켜가는 정치인으로 새로운 도전의지를 피력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 돌아와 농사
농산물 수입 맞서 ‘운동가’로
1993년 유기질비료공장 열기도 

2010년엔 농협 조합장 당선
많은 성과 냈지만 재선 포기
최근 북콘서트에 정당 활동도 
“손녀에 부끄럽지 않은 삶 살 것”


“철없이 열심히도 살았다.”

경남 창원시의 한 농업경영인이 7일 창원대학교에서 북콘서트를 열며 전한 책 제목이다. 농민운동가, 협동조합전문가로 활약한 지역일꾼 김순재 동읍농협 전 조합장이 저자다.

농대를 졸업하고 일찍이 고향으로 귀농해 30년 가까이 성실히 농사를 지으면서 치열한 농민운동가로, 그리고 초선이지만 다선 못지않은 농협 조합장으로 맹활약하며 굵직한 족적을 남겼던 1965년생 농업경영인 김순재 씨의 진솔한 인생이야기가 담긴 자서전이다.

김 씨는 경남의 대표적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 인근 농촌마을에서 단감, 시설채소, 한우 등의 농사로 복합경영을 하는 농업경영인이다.

두 아들 내외가 김 씨 곁으로 귀농을 해서 청년농업인의 길을 걷고 있다. 본인 농장의 농사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이웃 농민들도 살펴가며 농민들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농정의 농사’에도 열정을 바쳤던 김 씨의 치열한 삶이 자연스레 ‘자식농사’로도 이어진 것이다.

농업·농촌의 여건이 점점 열악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소농이 두 아들 모두에게 농업의 대를 잇도록 권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농촌에서의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치열히 열심히도 살았기에, 그러면서도 기쁘고 낙천적인 미소를 지켜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씨는 이른바 ‘86세대’다. 1983년 경상대학교 낙농학과를 입학했다. 대학 2학년 때 쿵푸 무술동아리에서 활동하다가 이웃 동아리방 전통문화예술연구회를 폭력써클이 학도호국단의 비호 아래 협박하는 모습에 분개해 함께 맞섰다. 학도호국단이 군사문화의 아류임을 인식하게 됐고, 대학 내 부정과 폭력을 가만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싸웠다. 그의 학생운동 시작이었다. 결국 이듬해 학도호국단은 문을 닫았다. 그 시기 한국사회의 민주화과정에서 청년 김순재가 가졌던 초심은 그의 인생을 두 번의 투옥으로 안내하기도 했다.

김 씨는 1990년 대학 졸업이 임박했을 때 학생운동과 관련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받았다. 법정에서 판사에게 “앞으로 10년 정도는 입 다물고 농사를 짓겠다”고 말했다. 10년은 묵묵히 농사를 짓고, 10년이 지나서도 ‘아니다’ 싶으면 할 말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모친이 홀로 농사를 짓는 고향으로 와서 벼농사부터 시작했다. 농사일에 발목이 묶이면서도 생활비조차 건지기 힘들었다. 대학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 갈 돈이 없어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낮엔 농사일을, 밤엔 이웃의 소개로 냉동 창고 하역 부업을 하며 버텨내는 시기도 겪었다. 2남 1녀의 재롱을 제대로 못 봤다.

더구나 농산물 수입 개방 확대로 농민들의 생존권 위협이 급격히 심화됐던 시대적 상황은 김순재를 입 다물고 농사만 지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에 농민운동가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농민들과 함께 잘 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농민이 되었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농민이 된 것이 아니었다”며 “그렇게 하려면 많은 농민을 만나야 했고, 이것은 농민이 된 내 삶의 모토이자 신념이었다”고 전했다.

고심 끝에 1993년 유기질비료공장도 열었다. 농민들에게 퇴비는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필요했고, 퇴비를 배달해주면서 많은 농민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농민단체 활동과 외부 일 때문에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일이 많아졌다. 2006년 빚이 4억으로 늘어나자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퇴비 사업에만 전념했고, 안정화시켜냈다. 나중에 주남저수지가 유명세를 타면서 창원시 권유로 퇴비 사업은 접고 농업에만 전념하게 됐다.

김 씨는 2010년 동읍농협 조합장으로 당선되면서 농민운동가 출신의 협동조합 개혁 전문가로 전국적 유명세를 타게 됐다. 물증 잡기가 힘들 뿐 암묵적 금권선거 관행이 근절되지 않아 표심이 왜곡되곤 했던 조합장 선거의 문턱을 치밀한 조직력과 전략으로 당당히 넘어섰고,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비롯한 조합 운영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구어냈다.

특히 단감 자율폐기를 단행하며 단감산업의 숙제를 피력했고, 경남농협 단감경남협의회 회장 등을 지내며 단감 소포장 도입과 수출단감 협상력 제고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에 재선이 무난한 상황이었지만 김 조합장은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재정투명성 확보와 조직운영시스템 정착 등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합장 5년 동안 나름 목표했던 것을 어느 정도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침 적합한 후임 일꾼도 눈에 보여 조합장 역할은 여기까지로 끝내고, 험지에서 새로운 도전의 길을 개척하고자 선택한 ‘멋진 놓음’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2016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의 도전에 그쳤으나, 당시 김 씨가 ‘반보장각(긴 다리의 반걸음)’이라는 소책자 등을 통해 제시한 농협 개혁의 방향과 의제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김 씨는 농협 개혁과 실전선거전략 등 다양한 주제의 특강과 글로 전국을 누비는 협동조합전문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김 씨의 이번 출판기념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다른 영역의 도전에 닿아있다. 그는 한 정당의 경남도당 ‘을지키기 민생실천위원장’이다. 억눌리고 가난한 처지의 ‘을’들을 정치권이 제대로 지켜내면서 농업·농촌의 희망과 농민의 미소도 지켜가고자 하는 도전에 나선 것이다

김순재 위원장은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농촌에서 손녀와도 함께 살고 있기에 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약속을 수정한다”면서 “어느 자리 어느 곳에서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피력했다.

창원=구자룡 기자 kucr@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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