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사랑이 전부…우렁이 친환경재배 가장 관심”

[한국농어민신문 최상기 기자]

▲ 전남 해남에서 친환경 쌀농사를 짓고 있는 민삼홍 씨.

수도권서 해남산 김 판매
1년도 못 버티고 낙향 결심
농기계 수리점 등 운영하다 
가업 이어 받아 쌀농사 시작

영농규모는 총 46만2000㎡
연소득 5억원 가량 올려
“식량이 곧 나라의 기둥” 강조

쌀 사랑이 전부다. 오직 한 분야에만 몰두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해박한 지식과 지난 경험이 친환경 쌀 생산의 정상에 우뚝 설 수 있게 했다. 내조의 힘은 정상에 도달하는데 한 층 힘을 더했다. 그를 설명하고 요약하는 수식어들이다. 천혜의 쌀농사 입지조건을 갖춘 전남 해남에서 친환경 쌀 생산의 정상에서 서 있는 농사꾼 민삼홍(54세)씨 얘기다.

해남은 넓은 농경지, 오염되지 않은 환경, 넉넉한 햇살 등 어느 하나 쌀농사에 부족함이 없는 천혜의 입지조건을 두루 갖췄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누구나 겪었던 젊은 날의 시행착오와 방황도 가지고 있다. 밝은 미래를 건축에서 찾기 위해 건축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꼭 전공을 살려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맨 처음 한 일이 유통업에 뛰어들어, 해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맛깔 나는 김 판매를 수도권에서 시작했다. 불과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낙향하기로 결심을 한다. 고향을 떠나 혼자 생활하던 차에 교통사고를 내고 더 이상 도시에서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판단 속에 낙향을 결심한다.

고향으로의 복귀 후 가장 시급한 일은 일거리와 결혼이었다. 농촌지역 출신 총각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인 결혼.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는 도시총각 뺨친다고 자신하고 있는 그에게 사랑이 싹트는 맘에 꼭 드는 결혼 대상자를 만나게 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시절 비가 내리고 집에 갈수 없는 처지에 놓였을 때, 해남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현재의 부인에게 하나밖에 없던 방에 줄을 한 가운데에 긋고 하루 밤을 청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사연을 수줍게 말한다.

여기까지가 인생 1막이었다. 젊은 날의 방황은 결혼과 함께 종지부를 찍는다.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마음 푸근하고 넉넉한 고향으로의 복귀라고 회상했다. 한때 잠시나마 노래방도 운영하고 농기계 수리와 대리점도 경영했다. 말할 수 없는 많은 사연이 녹아 있다. 겹겹이 쌓인 과거가 퇴적층이 돼 현재가 되고 그 위에 서서 새롭게 도전하는 게 삶이다.

그는 고향에서 대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쌀농사를 시작한다. 가업을 이어 받은 것이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쌀농사에 푹 빠져 버렸다. 현재 영농규모는 정확하게 수치로 확정 할 수 없을 정도다. 혼자서 하는 영농규모로는 다들 입이 벌어질 정도다. 700마지기, 46만2000㎡(14만평)이다. 여기에 쌀농사를 위한 육묘장을 운영한다. 300마지기는 본인소유다. 400마지기는 평당 1000원씩에 임대한 것이다.

올해는 얼마나 농사지을지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지만 이 수준은 상회 할 것으로 예상한다. 해남읍·황산면·화산면·문내면·화원면 등 해남군관내 5개 읍·면에 걸쳐 농경지가 분포돼 있고, 가장 먼 곳까지는 5~60km 거리에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한번 돌아보고 오면 한나절은 그냥 가버린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친환경재배다. 우렁이를 전적으로 이용한다. 해남은 따뜻한 기후로 우렁이가 월동을 한다. 월동을 한 우렁이는 잡초제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매년 치패를 새롭게 친환경 재배 논에 넣는데 월동 우렁이를 제거하는 것도 일이다. 우렁이 제거 전문 기술의 한 방법으로, 논에 수평을 맞추지 않고 깊은 곳을 만들어 물을 넣었다 빼면 우렁이들을 깊은 한곳에 모을 수 있다고 한다. 모인 우렁이를 황산동과 키타진으로 처리하면 거의 일망타진이 가능하다고 은근슬쩍 알려준다.

연간 쌀 생산량은 평균 마지기당 4섬으로 잡고 880kg에 700마지기면 61만6000kg, 연소득은 총 5억원 수준 순수익은 절반은 넘는다고 한다. 현재 가장 애로사항은 일손이란다. 지난해의 경우 3개월 정도 외국 근로자 6명이 농사일을 같이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룬 게 인생 2막이었다면 앞으로는 인생 3막을 꿈꾼다. 쌀산업은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우리 동포가 먹지 못해 해외에서 매년 구걸하다시피하고 있는 북한 현실에 비춰볼 때 통일을 대비한 쌀산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있다. 과거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구 소련)지역에서 발생한 원전폭발로 경제난·식량난에 힘들던 소련의 국내상황을 한층더 곤경에 빠뜨렸다. 소련지도자 미하일고르바초프는 경제난과 식량난 이 두 가지가 소련 붕괴의 결정적 계기라고 회고한 바 있다고 기억했다. 식량은 곧 나라의 기둥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된다고 강조한다.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다.

그는 쌀에서 희망을 찾고 꿈을 꾸고 있다. 여기에 힘들어도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조해주는 부인덕에 불우 이웃을 돕는 등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고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지역사회 불우이웃돕기와 봉사활동도 알리지 않고 하는 게 진심이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우리는 그를 이 시대 진정한 농업인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본인은 정이 가득한 영원한 털털한 농사꾼으로 불리기를 희망하며, 부모에게 물려 받았듯이 또 아들에게 대물림 농사를 기대하며 올 농사 계획에 한껏 부풀어 있다.

해남=최상기 기자 chois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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