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우수 후계농업경영인

[한국농어민신문 이강산 기자] 

전광열 한농연 영암군연합회장

젖소 키우며 조사료·볏짚 생산

생계 위해 농기계 영업도 

‘원유 쿼터제’로 위기 겪으며
농업단체 필요성 등 깨달아

농업인의 의견 적극 수렴하고
정책 개발에 주도적 나서야

“우리 농업인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농연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전광열(56) 한농연영암군연합회장은 영암군 학산면에서 젖소 18두를 키우며, 앵계영농조합법인 대표로 조사료와 볏짚을 생산하고 있다.

올해 초 신임 한농연영암군회장으로 취임한 전광열 회장은 지역단체들과 연대해 쌀 가격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 개최 등 회원들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힘쓰고 있다.

전 회장은 고향 영암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으로 상경해 20대 중반까지 8년 동안 가구를 만들며 도시생활을 꿈꿨지만, 1991년 아버지 건강이 악화되면서 고향으로 내려와 농업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고향인 영암군 미암면과 학산면은 대규모 간척지대로 밭이 없고, 수도작에 의존하고 있다. 당시 부모님이 가지고 계셨던 논 4000평으로는 충분한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 농기계 영업을 해오다 1996년 후계자에 선정돼 받은 자금 2800만원으로 한우 30두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전지식이 없이 뛰어든 한우사육은 시작부터 흔들렸다. 번번이 수정에 실패하면서 적자가 쌓여갔고, 결국 2년 만에 한우를 포기하고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젖소로 변경했다.

29두로 시작한 젖소 사육은 당시 하루 900ℓ를 생산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우유 쿼터제가 시행되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전 회장이 배정받은 우유 생산량은 430ℓ에 그쳤다.

전광열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하루아침에 우유 생산량을 절반 넘게 줄여야 했고, 자식처럼 키우던 젖소도 제값도 받지 못하고 팔아야 했다”면서 “당시 너무 억울하지만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었고, 그때 일이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당시를 인생 최대 암흑기로 회상했다.

전 회장은 당시 일을 겪으며 농업인들의 권익 대변을 위한 농업단체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이후 생계를 위해 농기계 영업을 계속 이어왔고 지금은 하루 우유 생산량 490ℓ, 수도작 1만2000평, 그리고 조합원 10명과 함께하는 앵계영농조합법인 대표로 조사료와 볏짚 작업 대행을 하고 있다.

그는 낙농업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언급하며 “지금 우유 쿼터의 개인 간 거래에 대해 낙농진흥회와 회사에서는 개입하지 않고 있지만, 거래완료 후 재등록 시 개인거래쿼터의 10%를 깍고 있다”면서 “농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농업인구가 줄어들면서 우리나라 농업분야의 어려움은 가중되는 상황이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농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농민단체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한농연을 중심으로 회원과 농업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정책개발에 주도적으로 앞장서는 등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전광열 회장은 “아들이 지금 농수산대학교에 재학 중인 미래 농업인으로, 우리 자식들이 농업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한농연 조직발전과 농업 발전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영암=이강산 기자 leek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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