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축산인으로 당당히 성공, 이정표 될 것”

[한국농어민신문 이장희 기자] 

40년 소 키우신 아버지 영향
농수산대학에서 한우 전공 

한시도 소 곁 떠나지 않고
볏짚 하나 없을 정도 농장 깨끗

세미나·축산교육 참여도 열심
소 눈빛만 봐도 병 알 수 있어

여성축산인으로 당당히 성공해 이정표를 남기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김은채 막내농장 대표. ‘소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김 대표가 어린 송아지를 쓰다듬고 있다.  
여성축산인으로 당당히 성공해 이정표를 남기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김은채 막내농장 대표. ‘소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김 대표가 어린 송아지를 쓰다듬고 있다.  

거칠기로 소문난 축산업에 도전장을 내민 젊은 여성이 있다. 경기 안성시 양성면에서 60여두의 한우를 키우는 막내농장 김은채(28) 대표다. 

소가 좋아 소 키우는 일에 미래를 걸었다는 그녀는 “여성 축산인으로 당당히 성공해 새로운 이정표가 되겠다”는 포부로 오늘도 축사를 지키고 있다.

김은채 대표는 영락없는 신세대다. 발랄한 갈래머리에 거침없는 말투, 노래를 좋아한다며 둠칫둠칫 몸을 흔드는 품세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김 대표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타고난 일꾼’이라고 입을 모은다. 축산을 시작한 뒤로 한시도 소 곁을 떠나지 않으며 축사를 지키는 성실함 때문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축사에만 들어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스키드로더와 트랙터 같은 대형 농기계를 몰아야 하고 60여 마리가 넘는 소들을 세심히 챙기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김 대표의 농장은 떨어진 볏짚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하고 깨끗했다.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아 낯선 이를 경계하는 소들이 아니었다면 축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소는 살아있는 생명이잖아요. 저만 바라보는 자식 같은 존재고요. 그러니 축사를 지저분하게 둘 순 없죠. 게다가 여긴 민가와 가까워서 냄새가 나면 소를 키울 수 없어요. 축산을 시작하며 가장 신경 쓰고 챙기는 부분이 축사를 깨끗하게 치우는 거예요. 그래야 소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이웃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지요”

김 대표가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한국농수산대학 대가축학과에 진학한 건 지난 2015년의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진로를 놓고 고민할 때 아버지(김영국 씨)께서 소를 한번 키워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40년 넘게 소를 키우고, 육가공사업을 해왔던 아버지는 축산을 하면 웬만한 직장생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셨어요. 게다가 소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탓에 제겐 식구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래서 길게 고민하지 않고 단박에 수락했어요.”

그렇게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해 동기 40명 가운데 홍일점으로 한우를 전공한 그녀는 지난 2019년 청년창업후계농으로 선정돼 사업자금으로 한우 4마리를 입식하며 독립적인 축사 운영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양성면에 1551㎡(470평)의 땅을 사서 4마리의 소를 들여 키운 것이 지금은 15마리로 4배 가량 늘었다. 부친과 함께 키우는 한우까지 하면 모두 60여두다.

“독립 축사를 갖게 되니 내 것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축사 옆에 컨테이너를 들여놓고 밤낮없이 소들을 돌봤거든요. 지금은 원곡면과 양성면을 오가며 한우를 키우고 있어요. 저를 지켜본 아버지가 이곳(원곡면) 소들도 저한테 한번 키워보라며 내주셨거든요. 이젠 저를 믿으신다는 얘기죠.”

소 울음소리로 아침을 여는 그녀는 늦은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양성과 원곡, 두 곳의 농장을 오가며 60마리가 넘는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우사를 정리하는 모든 일이 온전히 그녀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세미나며 축산 관련 교육이 있는 날이면 어디든 달려가 배우는 열성을 보인다. 지난해 초 한국농수산대학 한우전공 심화과정에 입학해 일주일에 한 번 전주를 오가는 것도 ‘선진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서다. 김 대표는 최근 심화과정도 모두 수료했다.

“지금은 소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고, 무슨 병을 앓는지 훤히 알 수 있어요. 수의사까진 아니더라도 ‘반반수의사’는 다 됐죠. 어린 여자가 거친 축산 일을 한다며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이게 천직인 거 같아요. 친구들과 만나도 소들 걱정에 빨리 돌아오고 싶다니까요.” 라고 말하는 김 대표. 

특히 김 대표는 힘겨운 한우농장을 하면서도 안성시 4-H연합회 부회장과 경기도 4-H연합회 사무국장까지 맡으며 지역 청년농업 활성화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도 자동으로 돌아가는 축사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자신의 노력은 계속될 거라는 김 대표는 “누가 뭐래도 소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안성=이장희 기자 leej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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