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 지키는 농군…각종 마을사업 이끌어내”

[한국농어민신문 백종운 기자]

직장생활 하다 1996년 귀농
생산·판매·농촌관광 추진 위해
마을단위 사업 필요성 느껴
자연학교·산촌생태마을 등
성과 내며 마을 변화에 앞장

개도국 지위 포기로 농업 위기
유지하거나 직불금 확 늘려야


“국가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있다면, 농촌에는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농군이 있습니다.”

차희주 한농연강원도연합회 감사는 농업인은 단순히 국민의 먹거리인 식량만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국토를 균형 있게 가꾸고, 가장 원초적인 민족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국민들께 정서적 안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춘천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강원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 33세 되던 1996년에 춘천 사북면으로 귀농했다.

1998년 축산부문으로 후계자에 선정돼 3000만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한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초창기 1만7000㎡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며 고추와 오이도 같이 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과 가뭄과 폭염 등 개인이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큰 변수들이 많았다.

이에 농축산물 생산과 판매, 농촌관광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마을단위의 공동체가 협력하여 사업을 전개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적극적으로 마을사업에 뛰어들었다. 2001년 새마을, 농촌건강장수마을, 2006년 새농어촌건설운동, 자연학교, 2007년 산촌생태마을 등을 추진하여 성과를 내며 마을을 변화시켰다. 수 십 년 정체된 마을의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공동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신적 합일점을 도출했으며, 주민들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힘든 고비도 많았다. 마을사업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달려갈 때는 마을 전체가 화합하고 단결해 잡음이 없었지만 성과에 따른 배분의 문제에서는 서서히 반목이 시작돼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의 진실이 왜곡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될 때는 마을 일을 그만 두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변화의 고통으로 감수했다.

농업소득이 안정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생산자인 농업인이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공영도매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농업인들의 공동체인 농협이 제 역할을 담당해 농업인 소득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역할을 망각하고 유통이나 판매에서 일반 상인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차희주 감사는 2013년부터 2100㎡ 육묘농장을 경영하며 농가에 공급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부인이 경영하던 한농종묘사를 통해 직거래방식으로 공급하며 귀농인 등 초보 농부들에게는 기술지원도 제공한다. 올 6∼7월에는 춘천시 농가에 총채벌레가 기승을 부리자 공동방역을 통한 피해방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초보 농부들은 농업관에서 세상 이치를 많이 배우고 있다고 한다. 씨 부려놓고 시간만 지나면 꽃을 피고 열매를 맺어 수확하는 줄 알았지만 관심을 갖고 보살피고 가꾸어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차 감사는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도 어쩌면 초부 농부처럼 단순하게 농민이 있고 농토가 있으니까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을 하겠지 하는 것으로 안주해 버리는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식량자급률 26%, 젊은 일꾼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는 농촌일손, 승계하기를 꺼려하는 농업경영, 한 집 건너 다문화가정, 30년 전과 같은 쌀 가격 등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큰 농업농촌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차희주 감사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개도국지위 포기로 또 한 번 농업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어 걱정이다”며 “개도국지위를 유지하든지 선진국 수준의 직불금을 지원하든지 정부는 선택해야지 농업인들의 생존권이 보장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춘천=백종운 기자 baek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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