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활 접고 선택한 가업, 후회는 없어”

▲ 송교선 씨가 노랗게 물든 벼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한농연영주시연합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소백산 자락 경북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 마을에 황금들판이 펼쳐졌다. 그 황금빛 물결 한 가운데 190㎝가 넘는 훤칠한 키의 건장한 사내가 산 같이 우뚝 서있다. 고령화된 농촌마을에서 갓 마흔 줄에 들어선 젊은 농업경영인 송교선(41)씨다. 2남2녀의 장남인 그는 가업승계를 위해 10년간의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과감히 고향마을로 내려왔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현재 수년째 한농연영주시연합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농사 시작
복합영농하느라 바쁘지만
한농연 회원 ‘자긍심’ 적극 활동

지금은 쌀값이 가장 큰 문제
외국인 노동자 고용 길 터줬으면

고1인 큰아들부터 아들만 셋,
누구라도 농사짓겠다면 반대 안해
젊은 농사꾼 살기 좋은 세상 올 것


-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나요? 농업경영인 선정된 시기는?
“서울과 안산 등 수도권에서 10년 간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했어요. 아버지가 농기계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 가업승계를 위해 고향마을로 내려왔어요. 본격적인 농사는 2009년 초에 처음 시작했어요. 선친이 92년도에 자금을 받은 한농연 회원이었어요. 아버님으로부터 농업경영인 지위를 승계 받아 한농연 회원이 됐어요. 지위 승계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한농연영주시연합회와의 인연은?
“5년 전부터 영주시연합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어요. 당시만 해도 다른 회원들과 연배차이가 많이 나서 정서적으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분들과 2~3년 함께 활동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현장 농업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대표 농민단체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자긍심이 생겼어요. 바쁜 농사일 가운데도 시간을 내서 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어요.”

-어떤 농사를 짓고 있죠? 농사일이 돈벌이는 되는지?
“벼농사 14만8500㎡와 생강농사 9900㎡를 짓고 있어요. 고추농사는 아주 조금(3300㎡ 정도) 지어요. 올 봄에는 복숭아 묘목을 9900㎡에 심었어요. 벼농사는 기계화가 가능해 농사짓기 수월한 것 같아요. 순흥면에서는 내가 논농사를 제일 많이 짓는 것 같아요. 복합영농으로 인한 매출규모가 연간 2억원 정도. 직장생활 할 때 보다는 소득이 나은 것 같아요.”

-농사지으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농사를 처음 시작할 무렵 인삼농사를 5년 정도 지었어요. 인삼포장이 비좁은 탓에 작업환경이 덩치가 큰 제 신체 조건과 안 맞아 그만뒀어요. 작업을 하려면 인삼포장에 몸을 구겨 넣어야 했으니까요(웃음). 인삼농사를 접고 대신 생강을 시작했어요. 한우도 40~50두 정도 키웠는데 연합회 사무국장 일을 맡고 나서는 소 밥 줄 형편이 못 돼 전부 처분했어요.”

-현장에서 볼 때 뭐가 제일 큰 문제죠?
“쌀값이 문제에요. 장기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해요. 직접 지불제를 통한 소득보전 뿐 아니라 초기에 공급과잉 물량에 대한 시장격리를 통한 시장가격 안정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해요. 물론 그에 따른 예산이 들겠죠. 하지만 격리조치로 시장가격이 지지되면 정부에서 지급해야할 직불금 규모가 줄어들겠죠. 벼농사를 많이 짓고 있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부분입니다.”

-농사짓는데 다른 애로사항은 없나요?
“마을에서는 내가 제일 젊은 농사꾼이에요. 바로 위 선배가 50대 후반이에요. 생강농사를 짓다보면 인력 구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을 때가 많아요.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들 해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가 안 될 지경이라는 분들도 있어요. 해외 인력을 농사에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시·군 연합회 활성화를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신규가입 회원 수를 지금보다 2배는 늘려야 해야 해요. 영주에서 지난해 12명이 농업경영인에 선정됐는데 실제 자금을 수령한 사람은 6명뿐이에요. 그 중 4명이 시연합회 회원으로 들어왔어요. 한농연 가입 조건을 완화해 선정된 사람은 자금을 수령하지 않더라도 회원가입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중앙연합회 차원의 제도개선이 필요하겠죠.”

-혹시 자녀들에게도 농사를 물려 줄 건가요?
“아들만 셋이에요. 큰아이가 이제 고1이에요. 아이들 중 누구라도 농사짓는다고 하면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급속한 농촌 고령화로 농촌에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면 젊은 농사꾼들은 규모화를 통해 기업화된 농사짓기가 가능해질 것 같아요. 그때는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이 도시에서 직장 다는 것보다 더 선호되는 환경이 마련되겠죠. 꼭 그렇게 될 거에요.”
인터뷰 말미에 송씨는 자신이 생산한 벼를 직접 도정해서 브랜드 쌀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싶다며 농부로써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10여 년 전 갑작스럽게 내린 고향으로의 귀농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홀로 계신 노모를 고향 마을에서 모시면서, 아버지가 하던 가업을 승계한 일이 자랑스럽기만 하다고 말한다.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인생2막에 농사일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손수 땅을 일궈 작물을 키워내는 일이 한없이 보람된 일이라 여기는 타고난 농사꾼이었다.

영주=조성제 기자 ch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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