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사과축제 취소 가장 아쉬워”

[한국농어민신문 백종운 기자]

농업인과 지역 문화인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홍천사과 축제를 성공으로 이끈 신복교 한농연홍천군연합회장은 농업정책 개발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홍천사과 알리기 위해
2016년 제1회 사과축제 개최
지역 문화인 등 직접 참여로
3000만원 들여 성공적 진행

생산된 사과 절반 이상 ‘직거래’
작목반도 결성, 소득 제고 주력

“코로나19 확산으로 지금 열려야 되는 홍천사과축제가 취소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사과농장 1만7500㎥를 경작하는 신복교 씨(59세)가 홍천사과에 대해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2007년 기후변화로 강원도에서도 사과농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특별한 기술도 없이 무작정 6800㎡를 시작하며 좌충우돌 사과농사가 시작됐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지금은 가능하면 자연의 섭리에 맞는 농법으로 사과를 생산해 전국에 50% 이상을 직거래로 판매한다.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사과나무도 잠을 자야하는 상황을 그대로 이해하고 여기에 맞는 보충적인 역할만 해주어 나무자체가 튼튼해지게 관리 한다는 것이다.

2000년 후계자로 선정되기 전부터 축산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목을 선도적으로 추진하여 홍천군 농업발전에 기여했으며 지금은 한농연홍천군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항공기 정비 기술자인 신 씨는 군대 제대 후 외국에 취직하려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엔지니어의 꿈을 접고 고향에 정착한 것이다.

1990년대에 돼지 600두 정도를 키우는 농장을 경영하다 판로에 한계를 느껴 정리하고 고추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로써는 포토육묘를 안하던 고추농사에 16만5000주를 포토로 육묘하여 고추농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지금은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후 옥수수 농사에서도 포토육묘를 실시해 몇 번의 실패 끝에 성공하여 지금은 옥수수 연구소에서 이를 바탕으로 실험을 할 정도다.

이처럼 앞서가려는 신 씨의 성격 때문에 많은 실패를 하며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겨냥해 12만5000㎡ 넓은 농장에 다양한 채소류를 생산했지만 판로가 막혀 폐기하는 등 혹독한 실패를 맛봤다. 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잘 생산되지 않는 그들의 채소류를 많이 찾을 것이라는 판단이 틀린 것이다. 이 같은 선도적 기질이 지금의 홍천농업의 밑거름으로 축적된 것이다.

2016년 홍천사과 생산면적이 100ha를 넘어서자 신 씨는 이제 축제를 통해 홍천사과를 알리고 본격적인 유통망을 구축해야한다고 판단 제1회 사과축제를 시작했다. 당시 3000만원으로 농업인과 지역 문화인들이 직접 참여하며 실질적인 축제로 진행해 성공적으로 끝냈다.

신 씨는 “축제는 지역적 특성이나 농산물 품목의 특성을 살려 거기에 맞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우리나라 대부분 축제는 연예인 공연과 길거리음식 등 너무 획일적이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한농연홍천군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책적인 대책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농업재해보험을 확충해 줄 것을 요구해 현재 홍천군 농업인들은 전체 보험료의 5%만 부담하면 가입할 수 있다. 농업인들의 부담비율이 전체적으로 3억 원 이상 줄어든 것이다.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농기계 사용률이 극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비싼 농기계를 각 농가들이 구입해야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농기계임대센터를 확대하여 쉽게 빌려 쓸 수 있도록 했다. 내년에도 2개소가 새롭게 열린다.

홍천농협을 중심으로 사과작목반도 결성하여 생산에서 유통까지 일원화된 시스템 구축으로 비용을 줄이고 소득은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교육비와 문화비 지출이 늘면서 농촌도 이미 생활비가 높아져 좀 더 세밀한 생산과 판매를 통해 소득을 높여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부인에게 일정한 봉급을 갖다 준 적이 없는 신 씨는 “지금의 꿈은 일정한 봉급을 부인에게 주고 큰 소리 한 번 치는 것”이라며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대변했다.

홍천=백종운 기자 baek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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