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한국농어민신문] 

올해는 쌀이 흔하다. 작년 가을걷이가 풍작도 아니었건만, 소비량이 줄어 쌀이 남아도는 실정이다. 지난 설에는 농협에서 조합원 명절 선물로 떡국떡을 돌렸다. 조합원이 둘인 우리집은 1kg짜리 열 봉지를 받았는데, 지인에게서 또 다섯 봉지가 들어왔다. 쌀농사 짓는 친구들이 가끔 쌀도 한 포대씩 안겨 줘서 일곱 대식구가 어언 반년 세월이나 공짜 밥을 먹고 있다. 

쌀값이 폭락하자 3월 23일 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쌀값 안정이 목표인 안이었지만 농민단체로부터 환영받지는 못했다. 처음 안보다 너무 후퇴해 실제로는 농민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면 정부입장은 어떠했는가.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해 주는 것은 농민을 위해서도 농업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 내용을 뼈대로 한 담화문을 발표했었다.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무총리의 담화가 발표될 때 내가 참여한 댓글 창에는 100%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채워졌다. 폭락하는 쌀값을 안정시키는데 왜 농업이 어려워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번에도 정부는 이해할 수 없는 대책을 발표해 공분을 산 바 있다. 쌀 생산 과잉을 막기 위해 ‘신동진벼’의 품종을 퇴출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동진벼가 어떤 품종이길래 보급을 중단한다는 걸까? 신동진벼는 5년 연속 국내 재배면적 1위를 차지한 품종이다. 밥맛 좋고, 병충해에 강하며, 수확량이 많아 농민들이 선호한다. 쌀이 남아도는 판에 생산량이 너무 많은 품종이라 도태를 결정했단다.

이것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쌀이 남으면 소비 진작 정책이나 수출을 모색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거늘, 많은 수고와 비용으로 개발한 우수 품종을 도태하다니. 이것은 농업을 돈 안 되는 껍데기 산업으로만 보는 인식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농업은 정말 껍데기 산업일까? 그리고 껍데기는 그렇게 하찮은 존재일까?

우리 과수원 땅은 심한 점질의 황토였다. 비만 오면 찐득한 흙이 무겁도록 장화에 달라붙는가 하면, 비 그치고 한 사나흘만 지나면 호미가 안 들어갈 정도로 흙이 딱딱해져 버리는 것이다. 땅의 물리성을 개량하기 위해 15년 세월을 초생재배 했지만, 욕심만큼 바꿀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왕겨를 넣기 시작했는데 2년 만에 유기물 함량이 정상에 도달했다. 온갖 노력에도 굼벵이처럼 느리게 반응하던 토양물리성이 왕겨를 넣은 지 단 2년 만에 정상 수치로 올라온 것이다.

농업을 껍데기 산업이라고 여기는 위정자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먹지 않고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쌀은커녕 좁쌀 한 톨 찍어내는 기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후 위기 시대에 식량 안보는 군사 안보만큼이나 엄중하다는 것을…. 인간 생명을 유지해주는 식량 생산을 위해 맨 앞에서 땀 흘리는 농민을 하찮은 껍데기로만 취급하다니.

농업을 정 껍데기 산업이라 여긴다면, 쌀 생산량을 정 줄이고 싶다면 농지법이라도 없애 주던지. 그 땅에 원룸이라도 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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