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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그래도 좋아금경애

온몸을 적신 땀에 옷이 감기는 더위에도 적과하는 일손은 멈출 수 없다. 엿장수처럼 가위를 찰칵 거리며 사과 알의 생사를 가르고 있었다.

한 손으로 가지 끝을 드는 찰나에 얘와 쟤, 그리고 너를 남긴다는 계산이 끝난다. 결정하고 나면 망설임 없이 사과 알의 줄기부분을 정확히 잘라낸다. 때로는 계산을 잘 못해 좋은 것을 자르고는 ‘그건 남겨야지 바보야’ 하면서도 눈은 다른 가지로 건너간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메마른 사과밭을 적셔줄 것 같아 소나기가 오길 학수고대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쉬는 중이었다.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내다본 소백의 등날에서 희뿌연 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창문에 비가 들이치고 뒤따라 콩 튀듯 타다닥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소리쳤다.

“우박이다, 우박!”
“엄마야, 우짜노? 산밭은 적과 다 해 놨는데….”

적과를 안 한 밭은 우박 맞은 애들 위주로 잘라내고 좋은 사과알을 남기면 되지만, 이미 적과를 한 밭은 대책이 없다. 우박은 그렇게 30분간이나 쏟아졌다. 서둘러 밭으로 간 남편은 한참만에야 전화를 했다.

“어찌 됬니껴? 많이 맞었제?”
“응 별로 성한 게 없네.”

나도 서둘러 밭으로 가 보았다. 사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사과는 그야말로 성한 게 없었다. 다행히 잎 속에 묻혀 있던 애들은 몽실한 털옷을 입고 새색시 마냥 웃는 듯해서 얼마나 이쁜지.

며칠 후, 조합에서 우박 피해 조사를 나온다고 해서 밭에서 기다렸다. 문제는 높은 곳은 거의 전멸했는데 조사는 나무 밑에서 대충 세어서 결정한단다. 사인을 못해준다는 남편과 조사원이 입씨름을 했다. 결국 사인해 주는 남편을 보며 농사꾼의 한계를 절감했다.

어느 집은 보험도 안 들었는데 올해 농사는 물론 내년에 꽃이 필 잔가지까지 몽땅 훑어버렸단다. 혼자서 3천 평 과수원을 하는 젊은 아낙은 피해가 심해 두문불출이라는 말도 들렸다. 그래, 힘을 내 보자. 우리는 그래도 내년 농사까지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난데없이 헬리콥터가 낮게 날고 있다. 이번에는 산불이다. 저 높은 산 중턱에 어찌 불이 난단 말인가. 헬기는 검은 연기 솟아오르는 큰 산 중턱 위 창공에서 연신 물을 쏟아 붓는다. 간밤에 잠깐 내린 소나기와 함께 낙뢰가 떨어졌다니, 궂은일은 한꺼번에 오는가 보다.

농촌의 일상은 때로 그날이 그날 같다는 소리를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사건이 생기면 줄줄이 이어져서 불안이 온 동네를 휘감고는 한다. 그래도 산불에 온 동네가 걱정하고 우박에 서로 위로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정이 있는 이곳이 나는 좋다. 창으로 내다보며 “어디가요?” 소리 칠 수 있어 참말로 좋다.
 

   
 

금경애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모듬북 공연단 ‘락엔무’ 회원
사과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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