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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마을회관에서의 고민최귀옥

[한국농어민신문]

입춘이 지나고 우수의 아침 설경이 아름답다. 서해에서 밀려온 눈구름이 봄이 오는 길목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올해 겨울은 따뜻해서 땅이 얼지 않았다.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아 마당 쓸어내는 수고도 없었다. 하우스 바람막이 양지쪽에는 벌써 봄까치꽃이 파랗게 피어나고, 어쩌다 땅에 딱 달라붙어 피어난 민들레 노란 꽃도 한 송이 보았다. 봄꽃이 피어날 이른 봄에 눈꽃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그냥 가기 아쉬운 겨울이 마지막 은빛 축제를 벌이고 갈 모양이다.이런 날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사람 농사지으러 마을 회관으로 간다. 동네 돌아가는 소식도 듣고, 농사짓는 이야기도 나누고, 한편에서는 동전 따먹기 화투도 친다.

오늘의 화두는 강아지다. 묶어 키우는 지숙이네 개가 언제 짝짓기를 했는지 강아지를 여섯 마리나 낳았단다. 지난해 봄부터 동네를 떠돌던 검둥이가 아비라며 입을 모은다. 젖 뗄 때가 되어서 차에 태워 이웃마을로 나섰으나 허탕이었다. 사료 값 만 원 붙여 주겠다며 동네 분들께 권하니 좌중들은 지숙엄마가 팔자에 없는 개장수가 되었다며 박장대소를 한다. 그 와중에도 삐약이 아줌마가 여기저기 전화를 넣는다. 지금은 나이 들고 팔다리가 아파 퇴역한 장돌뱅이지만, 발이 넓어 전국으로 병아리를 팔러 다녀서 택호가 삐약이가 되셨다.

삐약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종계장을 운영하는 청년이다. 병아리를 사가는 고객에게 강아지 한 마리씩 선물로 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 그 청년의 고민이 더 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병아리 파느라 정신없을 때 슬며시 놓고 간 강아지가 열 마리도 넘는데, 그 녀석들 새 주인 찾아주기도 벅차다는 것이다.

자급자족의 농경시대 때 개는 가축으로, 집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주인의 사랑을 받았다. 너나없이 한두 마리씩 키우다가 고기가 필요할 때는 보양식으로, 돈이 필요할 때는 내다 팔았다. 강아지 한 배 낳으면 안살림이 한 가지씩 느는 재미로 개를 키우고 거두었다. 나도 그런 부수입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과 무역이 자유로워지고 싼값에 개고기가 수입되면서부터 경제적 존재이던 개가 정서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올림픽을 준비할 때 선진국들의 문화와 여론을 의식해 그들이 혐오하는 식품을 먹어서는 안 된다며 정책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농촌사회에서도 분양 때가 된 강아지나 유기견이 문제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냈고 세계적인 예술인이 탄생했다. 한국드라마와 영화, K팝 등 한국의 감성이 지구촌 감성을 움직여 세계인이 우리 문화를 공감하는 한류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 이제 오래된 우리의 전통과 풍습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인권을 중시하고 다수와 소수를 함께 아우르고 나아가 동물도 소중히 여기며 동물복지에도 신경 쓸 만큼 성숙해진 것이다.

강아지 역시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1인 가구와 2인 가구가 많은 세상에서 강아지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동물 학대는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는다. 농촌에서도 이제는 육견으로 개를 키우지 않아 개 짖는 소리도 점차 사라져간다.

마을을 떠돌며 지숙이네 강아지를 낳게 한 검둥개가 한동안 눈에 띄지 않아 궁금하던 차에 이웃 마을에서 윤기 나는 털을 찰랑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지난해 봄에 본 너겁이 된 털과 야윈 모습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키우다 버리는 유기견을 누군가는 측은지심으로 거두는 모양이다. 비닐 씌워 작물이 들어간 밭에 돌아다니며 발자국마다 구멍을 뚫어놓아 미워했는데, 윤기 나는 털의 잘생긴 모습을 보니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반가웠다.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지숙이네 강아지는 어렵사리 모두 새 주인을 만났다. 나도 한 마리 가져왔는데 떠돌이 아빠를 똑 닮아 털이 새까맣다. 새 식구가 된 강아지는 사료보다는 밥을 더 좋아한다. 그야말로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다. 멍멍이를 아주 좋아하는 세 살짜리 손자 은성이가 주말에 오면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까르르 웃는 모습을 연상하니 입양한 보람이 있다. 이렇게 해서 마을회관에서 함께한 고민이 마을에서 모두 풀렸다.

겨우내 점심 한 끼 식사로 돈독했던 이웃들의 고추 모종 정식 시기가 다가온다. 감자 심는 삼월이면 농사일로 더 분주해질 것이다. 이제 우수의 아름다웠던 설경은 단꿈처럼 사라지고 바람 불고 햇볕 쏟아지는 거친 땅으로 나가겠지. 보석 같은 생명 양식 알알이 곡식을 키우러.

/최귀옥 월간 순수문학 시 부분 신인상, 월간 축산 묵장 수기 당선, 농업인 신문 영농수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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