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영

[한국농어민신문]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엔 커다란 비닐봉지 서너 개가 들려있었다. 그게 뭐냐고 묻는 내게 남편은 선물이라며 밭에 들러서 왔다고 했다.
 
“이렇게 많이 따왔어, 이걸 다 어떻게 먹으라고?”
“이웃과 나눠 먹어.”

나는 많은 채소를 보고 반갑기 보다는 처리가 더 걱정이었다. 고추는 먹음직스럽고 깨끗했지만 쌈 채소는 가뭄이 심해선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쪼글쪼글해진 이파리 모양을 하고 있다. 헝클어져 볼품없고 제멋대로인 채소를 어떻게 이웃과 나눠 먹느냐며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고 밖에 내다 놓았다. 

하지만 마음은 저녁시간 내내 대문 밖의 채소 보따리에 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푸대접을 받은 채소가 무슨 잘못인가 싶어 가지고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힘들게 가꾼 남편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잠시 옹졸했던 마음을 버리고 남편의 수고를 생각하며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니 봄에 채소를 심던 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난 4월 끄트머리쯤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기 위하여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이 이른 시간에 밭에 모였다. 남편과 나는 밭이랑에 비닐을 씌우는 일을 맡았고 다른 식구들은 모종을 심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할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몸이 여기저기 쑤시기 시작했다. 특히 멀칭 비닐을 이랑에 옮기는 일을 할 때는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삽으로 고랑의 흙을 떠서 비닐을 덮는 일도 내게는 힘에 부쳤다. 고추를 심는 일은 좀 더 쉬울 것 같았지만 그 또한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았다. 입에서는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이고 어깨 아파라,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쑤시고.” 옆에서 잠자코 일하던 시누이가 한마디 한다. 
“언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엄청 아파요.” 시누이의 말을 듣고서야 윗사람으로서 너무 참을성이 없었음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날따라 백여 평의 밭이 열 배는 더 커 보였다.  

그렇게 힘들게 심은 채소는 비와 바람과 가뭄을 견디고 자랐을 것이고, 남편도 그렇게 힘들게 심고 가꾼 채소가 좋지 않다고 그냥 밭에서 썩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동생들과 이웃과 나눠 먹겠다는 마음 하나로 컴컴해 잘 보이지도 않는 밭에서 허둥지둥 모기를 쫓아가며 한 장 한 장 땄을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정성을 생각해서 깨끗한 것만 골라 신문지에 싸서 네 개의 봉지를 만들었다. 

나눠 먹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농약을 안 하고 키운 농산물이라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과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이웃에게 주려면 못 생기고 실하지 못한 것은 줄 수 없다. 그런 것을 주느니 안 주는 게 훨씬 낫다는 게 내 주장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제일 못생기고 볼품없는 채소가 우리 차지가 될 때도 많다.

하지만 나눠 먹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선물한다. 늦은 저녁, 우리 부부는 흙의 선물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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