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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女담] 일방석
   

풀을 벤다. 콩과 들깨포기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가면서 풀을 벤다. 폭염이 지속되는 이 계절에도 으스름히 밝아오는 새벽  일은 기분이 상쾌하다. 이런 느낌에 농부들이 새벽일을 하는가 보다. 내가 지금 풀을 베는 곳은 밭이 아닌 동네 길옆이다. 우리 논 옆의 둑이라 농사랄 것까지는 없지만, 널찍한 둑이 아까워 이것저것 곡식을 심어 놓고 조석으로 가꾸는 중이다.

작년에도 이 둑에다 곡식을 심어 가꾸었다. 깨끗하게 해 준다고 풀이 자라는 데로 모두 뽑아 주었다. 보기에는 말끔하니까 지나다니는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를 잘 짓는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제초제를 주어서 씨를 말려야지 힘들어서 어떻게 매일 뽑느냐고 한결같은 걱정을 하신다.

제초제 사용이 손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 우리 농토가 산성화되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많은 농지가 오염될지도 모른다. 사실 풀을 뽑거나 베는 일이 쉽지는 않아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온몸이 나른해진다. 그럴 때는 어디 앉을 때가 없나 살펴보게 된다. 풀에 앉자니 아침이슬에 옷이 젖을 것 같고 흙바닥에 앉자니 흙투성이가 되겠다. 이런 불편함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러 해 전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남녘으로 여행을 가다가 넓은 들판에서 양파를 캐는 아낙들을 보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 아낙들 엉덩이에서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것이 그 모양새가 그렇게 우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것을 매달고 다니면서 일을 할 수가 있을까 궁금하였다. 멀리서 보기로는 걸리적거려 귀찮을 것 같았다. 그것이 일방석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오래 전, 모내기를 하려고 어린모를 찌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일꾼들이 들에 나갈 때 바지게에 송판으로 만든 됫박 같은 모양의 것을 여러 개 지고 가서 논둑에 내려놓으면 일꾼들이 하나씩 들고 논에 들어가 깔고 앉아서 모를 찌던 때가 있었다. 비료부대에 짚을 넣어 새끼줄로 묶어서 깔고 앉아 모를 찌는 어른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일방석의 원조였나 보다. 지금처럼 밭일하면서는 이용되지 않았는데 선조의 지혜가 발달하여 이제는 만능 방석이 나왔다. 점점 발전되어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바지 입듯이 두 다리만 끼우면 언제 어디라도 옮겨 다니면서 편하게 일을 하고 쉽게 쉴 수가 있다.

연초에 작은 부주의로 엉덩이 꼬리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두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께서 일 년은 쉬라고 했지만 밀린 일이 태산이라 쉴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프다. 잠시라도 일방석이 없으면 몹시 힘이 든다. 일할 때면 소중히 여겨 틀림없이 챙기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어르신들이 아기가 타다 버린 헌 유모차를 열심히 몰고 다니듯, 나의 한쪽 팔엔 일방석이 흔들거리며 매달려 일터 어느 곳이든지 동행한다.

남녘여인들의 엉덩이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것을 보며 웃던 내가 오늘도 엉덩이에 일방석을 매달고 있다. 옛날 어르신들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푹신푹신한 쿠션의 호사스러움까지 누린다. 언제 어디서든지 쉴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일방석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분께 감사함을 느끼면서 열심히 풀을 베고 있다.

지금의 농촌 실정이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모두 나가고 노인들만이 들녘에서 일하고 있다. 체력이 저조하니 자연히 쉬는 시간도 잦다. 일방석은 꼭 쉬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새참을 먹을 때나 점심을 먹을 때 일방석만 매달고 있으면 어느 장소에서든지 도시락을 펼치면 밥상이 되고 휴식 공간이 된다. 격식을 차릴 것도 없고, 장소를 따로 마련할 것도 없다. 양지바른 곳에 앉으면 의자가 되는 만능 방석이 어느 일등석 자리보다 편할 것이다. 제대로 갖춘 쉼터는 아니더라도 식사 후 맛있는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어느 카페가 부러울 것인가. 어느 자식이 이보다 만만할 것인가.

모양새 좋고 으리으리한 소파는 아니더라도 고달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일방석. 당신은 언제 누군가에게 일방석처럼 편안함을 주는 존재 되어 주느냐고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윤상숙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충북 총무, 음성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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