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한국농어민신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 투표를 하고 왔다. 낮에 과수원 일하려고 서둘러 갔는데도 투표장에는 많은 사람이 줄 서 있었다. 코로나 19사태로 투표율이 낮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국가 정책에 내 뜻이 반영되기를 바라는 높은 수준의 의식이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끈 모양이다.

지구촌이 어수선한 가운데 내년으로 선거를 연기하거나 중단한 나라가 몇몇 있다. 이 와중에 일정대로 진행하는 한국 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바이러스의 큰 확산 없이 선거가 끝난다면 우리 시스템을 자국 선거에 참고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바이러스의 창궐 앞에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대단한 나라들이 무너지는 사실이 놀랍다. 사태 초반에 유럽 쪽에서는 심각한 동양인 혐오 정서가 있었다. 백인이라고 해서 바이러스가 비껴갈 리 없지 않은가. 인간에게는 백인 우월주의가 통했을지 모르지만, 바이러스는 인종차별을 안 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일 텐데 말이다.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인간 세상은 힘센 자의 뜻에 따라 질서가 재편되어 왔음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보다 월등한 힘이 있다면 계산, 술수, 허풍, 태만 등등이 정공법을 이길 수도 있는 인간 세상. 그러나 바이러스의 공격은 정공법만이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전 세계가 절감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 확진자가 많이 나올 무렵에 미국의 트럼프는 코로나 19를 독감 수준이라 괜찮다고 허풍을 떨며 준비하지 않았고, 일본의 아베는 확진자가 없다며 눈속임하기에 바빴다. 우리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진단키트 개발을 서둘렀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은 검사하고, 마스크 사용을 권하는 등의 정공법을 택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종교 단체에서 예상치 못한 집단 감염이 나왔지만, 의심 증상이 있는 사람은 빠짐없이 찾아내어 검사하며 중요한 자료를 쌓아갔다. 현재 확진자 1만명을 넘어섰지만, 완치율 70%에 하루 확진자 수도 50명 아래로 안정세에 들었다.

복숭아 꽃눈을 솎아주다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앉아 핸드폰을 열어본다. 화면에는 참혹한 분위기의 미국 상황이 나온다. 급증하는 사망자의 시신을 미쳐 다 수습할 수 없어 묘지섬에 집단 매장하는 영상이다. 전시에나 있을 법한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다니. 그 어떤 무서운 병에 걸려도 돈 많은 사람은 최고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치료는커녕 사후에도 인간 존엄성마저 훼손되고 마는 저 양극화된 사회. 전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나라지만, 이번 사태에서 의료진의 필수품인 마스크와 보호복, 면봉조차 부족하다니 이런 나라를 어떻게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미국 사회가 사실은 허상이 아니었을까.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며 준비에 소홀했던 미국만이 심각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은 피해 갈 거라는 어림없는 희망에 빠져있던 유럽의 나라들,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려는 욕심으로 사태 확산을 숨긴 일본까지 혼돈에 빠진 상태다. 정부를 믿지 못한 국민은 사재기에 나섰고, 의료체재는 붕괴하였으며, 비상사태 선포가 줄을 잇고,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차분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충실하고, 의료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최 일선에서 바이러스와 맞섰으며, 기업도 사태 해결에 앞장서고, 질병관리본부는 수준 높은 방역 조치를 이끌고, 정부는 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총괄하고 있다.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를 신뢰하는 국민은 사재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생필품은 언제든 살 수 있다. 우리의 이런 시스템은 전 세계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이번 위기 속에서도 코로나 진단키트와 PCR 유전자 증폭기를 안정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우리의 방역 장비를 남들보다 먼저 사기 위해 전 세계의 정상들이 우리 대통령에게 부탁하는 상황이다. 방역 장비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모든 나라의 희망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바이러스의 늪에 빠진 저 대단한 나라들을 잡아줄 유일한 동아줄이 우리라니. 이 모든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며 사실은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전 세계는 국가 운영 방향을 수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진지하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을까. 진정한 선진국이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전 편집장, 회장 역임, 문예운동 신인상,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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