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

들통으로 붓는 것처럼 장맛비가 내린다. 농경지가 침수되었으며 도로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산사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한숨이 깊어져만 간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사정은 정반대였다. 봄부터 이어진 가뭄에 전 국토가 메말라 갔다. 저수지마다 바닥이 드러난 지 오래였고, 다랑논은 모내기도 못 했다. 어느 농부는 모내기를 하기 전 자신이 먼저 말라 죽겠다고 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만 풍작을 이룰 수 있다. 심어진 모들이 땅내를 맡으며 푸릇푸릇 웃자라야 할 유월의 들판이 타들어 가는데 답답하게도 온다는 비는 영 무소식이었다. 한낮에 불어대는 더운 바람을 마주하면 마치 대형 헤어드라이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널고 나면 금세 뽀송뽀송 말랐다.

식수까지 위기였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연신 보내는 문자는 물 절약으로 가뭄을 극복하자는 내용이었다. 일찍이 물 위기의 나라로 낙인찍힌 우리지만 나부터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돈은 아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었는데 자원은 공짜요 덤으로 여겨왔다. 말라버린 저수지, 농사꾼이 먼저 말라버리겠다는 농부, 오그라드는 작물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농심은 늦게나마 물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실천하려 부지런을 떨었다.

그간의 습관이 무섭다. 싱크대 앞에 서면 설거지 그릇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손이 먼저 수도꼭지를 열었다. 쏟아진 물은 수챗구멍으로 쏜살같이 빨려 나갔다. 아차! 하며 급히 수돗물을 잠그지만 이미 흘러간 물은 어찌하지 못해 내 손등을 내가 치고는 했다.

조무래기 시절 마을 공동우물에서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와 항아리에 채웠던 그때처럼, 부엌문 가까운 곳의 뒤꼍과 바깥 샘에 큰 함지박을 놓고 물을 채워 놓았다. 뒤꼍의 함지박 물은 주로 쌀과 푸성귀를 씻었다. 씻고 난 물은 텃밭으로 들고 가서 나비물을 뿌렸다. 바깥 함지박에 담긴 물은 빨래와 세안을 한 후 꽃나무와 잔디에 뿌려주고는 했다. 하지만 긴 가뭄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바가지의 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뿌려주었건만 텃밭의 푸성귀들은 시들시들 싱그러움을 잃었다. 장맛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여지없이 틀렸다.

이러다 다 말라죽는 건 아닐까 싶을 때쯤 드디어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오기 싫은 거 억지로 오는 것처럼 슬쩍 뿌리고 가고는 했다. 어느 순간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고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하더니 장대비가 내렸다. 내렸다 하면 억수장마다. 그 가뭄에 어찌어찌해서 농사 다 지어놓았더니 폭우가 쓸고 가버렸다. 인근 도시 청주에는 강이 범람해 주택이 잠겼다. 산사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홍수로 이재민이 발생한 건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도 가물더니 이번에는 홍수라…. 골고루 나누어서 좀 주시지 어쩌자고 이렇게 한꺼번에 주신 걸까. 심한 가뭄 끝에 내리는 폭우에 유난히 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박윤경
문예한국등단, 진천문인협회 회원,
대소창작교실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멍석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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