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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이번 휴가철에는이수안

올해는 겨울 휴가를 빨리 즐기려고 일찌감치 김장을 했다. 농기계와 과수원 월동준비까지 마치자 한해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휴가철이 시작된 것이다. 직장인들이 그렇게도 꿈꾸는 긴 휴가, 어떻게 써야 두어 달간의 휴가를 알차게 보낼지 궁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겨울 초입이다.

“카톡, 카톡”

예순 명에 육박하는 촌부가 만나는 카톡 방에서 연신 카톡 음이 울린다. 농사철에는 손가락 몇 번 누를 짬도 없어 한가한 방이었는데 겨울 들어 문지방에 윤이 날 정도로 북적거린다. 긴 휴가를 맞은 건 나만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지난달 이 방에는 다양한 풍경의 김장 사진이 올라왔었다. 마치 바통이라도 이어받는 것처럼 중부지방에서 남부지방 순으로 들려주던 김장 이야기가 시들해질 즈음이었다. 누군가가 메주를 매달았다며 처마 끝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 김장때처럼 또 중부지방에서 남부지방으로 내려가며 메주 소식이 올라왔다.

며칠 전부터는 너나없이 서울 이야기에 열중이다. 농사일밖에는 관심 없던 촌부들이 뜬금없이 왜 서울 이야기를 할까. 지금부터 딱 일주일 뒤에 서울에서 열리는 일박이일의 출판기념식 행사 때문이다.

이 카톡방 식구들은 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는 촌부들이다. 개개인의 문학적 성향에 따라 시·수필·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지만 문학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글이라는 소박한 말을 좋아한다.

촌부에게는 글 소재가 풍부하다. 도시에서는 잊혀가는 언어, 자연부락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 돌멩이, 흙, 풀꽃, 그리고 농사…. 그 무엇을 소재로 글을 써도 감동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돌아보니 농사꾼에게 지난 계절은 매우 치열한 시간이었다. 여느 해보다 길고 심했던 봄 가뭄, 기나긴 늦장마, 더구나 인력난까지 심해 우리는 한 가정의 안주인 역할 외에도 외부인력 한 사람 이상의 노동력까지 감당해야 했다.

이 버거운 현실은 우리에게 가슴 저미는 글을 쓰게 한다. 농촌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가슴에는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쓴 글을 책으로 엮어 출판기념식을 열게 되었으니 카톡방이 서울 이야기로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하물며 27년째 이어온 행사임에랴.

그러나 농촌에 젊은 층이 줄면서 문학회에 새 가족이 잘 늘지 않아 고민이다. 나는 12월 11일~12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리는 출판기념식에 자존감 높은 팔도의 촌부들이 많이 참여하기를 기대해본다. 화려한 글재주가 없어도 괜찮다. 농사에서 얻는 귀한 경험이 독자의 가슴에 생생한 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촌부 대부분은 두어 달 이상의 긴 휴가를 맞지 않았는가. 이번 휴가철에는 오직 나만을 위해 일박이일의 시간을 당당하게 내 보자.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회장 역임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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