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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다시 희망을유봉희

[한국농어민신문]

‘카톡’

새벽 6시, 카톡 소리에 잠이 깬다. 어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보낸 쑥갓이 4.5kg 박스 당 2600원에 낙찰되었다는 메시지다. ‘한 단 값이 아니고 한 박스 값이 2600이라고?’ 숫자를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벼가며 보아도 2600원이 확실하다. 쑥갓 40박스 뜯어서 보냈더니 10만 원 남짓이라니. 운임비, 박스 값, 수수료를 빼면 5만 원도 채 안 남는 돈이다. 내 품삯은 고사하고 밤새도록 지하수 퍼 올린 전기요금도 가까스로 내게 생겼다.

새벽부터 힘이 쭉 빠진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땅은 거짓말 안 한다는 농사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땅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거라고 했다. 순간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어떤 사람들이 거짓말하는지 우리가 그거 하자고 했다.

나는 올해 농사경력 27년 차다. 농산물은 27년 전 시세나 지금 시세나 거기서 거기다. 그에 비해 모종 값, 박스 값, 비료 값, 영양제, 비닐하우스에 씌우는 비닐 값 등의 농자재 값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 들어간다. 어디 농자재 값만 올랐겠는가.

밀가루 값 오르면 밀가루로 만드는 라면, 빵, 과자 등은 금방 가격이 오른다. 어제는 생활용품 몇 가지 사려고 마트에 갔더니 작년에 산 가격보다 훨씬 오른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이 올랐냐고 했더니 이런 것을 만들려면 기름으로 만드는 건데 석유, 경유, 휘발유 값이 많이 올랐지 않느냐고 했다. 이렇게 공산품은 생산자가 생산비에 자신 몫의 이익금을 얹어서 적정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농산물은 농사짓는 사람이 올릴 수가 없다. 농수산물 시장에서 받아주는 대로 받는다. 길가에 나가 직거래도 몇 번 해 보았는데, 하루에 몇 명 오는 손님 바라고 일손 놓고 나가 팔  수가 없다. 나는 주 작목이 오이농사인데 오이 따고, 곁순 따고, 줄기 올려주고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많다. 인건비나 싸면 한 사람 품값 주고 할 텐데, 인건비는 해마다 오르고 일손 구하기도 어렵다.

우리 하우스 주위에는 상추 심은 집도 있고 시금치 심은 집도 있는데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갈아엎었다. 하지만 우리는 차마 쑥갓을 갈아엎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나는 정말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안 할 수가 없다. 환갑 된 여자가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무엇이든 해서 생활을 해야 할 게 아닌가.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힘이 빠져 있는데, 남편도 봄이 오려고 그런지 기운이 없다고 해서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추어탕이 나오기 전에 몇 가지 반찬이 나왔는데 내가 농사짓는 쑥갓이 올라왔다. 진초록의 쑥갓 나물이 올라온 식탁이 싱그러웠다. 얼른 한 젓가락 집어먹었다. 살짝 데친 쑥갓에다 두부를 으깨어 무쳤는데 쑥갓 향과 참기름이 어우러져 향긋하고 고소했다. 이렇게 맛있는 쑥갓이 왜 한 박스에 2600도 못 받을 때가 있는지 나는 그것이 의아하다.

추어탕까지 먹었으니 기운을 찾아 다시 쑥갓을 뜯는다. 아무리 고민해도 농사는 그만둘 수 없는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쑥갓에게 말한다.

“니들 요즘 몸값 싸니까 천천히 크다가 몸값 비싸지면 그때 좀 빨리 커줄래?”

통통한 줄기의 쑥갓이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잎이 나풀나풀 춤을 추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데 시동생이 전화했다.

“형수님. 지난번에 주신 쑥갓 맛있게 먹었어요.”

돈 안 되는 농사지만 내가 농사지은 걸 맛있게 먹었다고 하면 나는 행복하다. 어쩌겠는가.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나오겠지. 쑥갓 농사에서 빠진 기운 오이 농사에서라도 찾아봐야지.

나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오이 모종이 자라고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인의 속이 들끓어도 오이 모종은 마치 어린 아기처럼 맑은 모습으로 얌전히 자라고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쑥갓 농사는 결과가 나쁘지만 아직 주 작목인 오이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우리 부부에게서 빠져나가버린 기운을 되찾아 줄 오이 모종을 보며 나는 다시 희망을 생각한다.

/유봉희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오이 호박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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