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이

[한국농어민신문]

미운 정, 고운 정은 있기 마련입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22년을 살았는데요.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미울 때는 ‘어머님도 내가 밉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지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막내며느리인 저는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옆지기가 시어머니랑 함께 살기를 원했거든요. 어머님이 유별나다는 것을 시집살이를 시작하면서 알았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 비밀은 시집살이 보름 만에 모두 알았다지요. 어머님 자존심 살려드리며 22년을 살았습니다. 제 가슴은 아무도 모르는 숯덩이가 까맣게 멍울멍울 져 쌓이고 만성 위염을 달고 살았습니다. 어머님 하늘나라로 떠나시기 몇 해 전, 어머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대답이란 걸 한 번 했습니다.

“네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으면 누가 이해해주냐! 내 가슴 숯덩이 쌓인 걸 네가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냐!”

어머님 가슴에도 숯덩이가 있나 봅니다. 왜 없겠어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인데요. 어머님은 저를 많이도 힘들게 했지만 고운 정으로 살았습니다. 급하게 이사 나오면서 살림살이 절반은 정리했습니다. 어머니 유품이라 생각하고 재봉틀 대와 다듬잇방망이를 가져왔습니다. 방망이와 짝을 이루는 다듬잇돌은 사촌 형님 드리고요. 돌절구는 나중에 찾으러 온다며 맡겼지요. 너무 무거웠거든요. 돌절구는 시집와서 저도 사용했던 역사가 있는 절구입니다. 다듬잇방망이는 시집살이할 때도 써보지 않아서 구석에 밀어두었지요. 요즘은 전기다리미가 있으니 다듬이질할 일이 없잖아요.

제 유년 시절에는 엄마가 이불 홑청을 빨아 풀을 먹이고 널어 꾸둑꾸둑할 때 걷어서 편편하게 접어 보자기로 싸고서는 저더러 자근자근 밟으라 하셨습니다. 그게 주름을 펴는 것이더군요. 다듬이 방망이질 대신하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봉틀 다리에 얹혀 있는 다듬잇방망이를 꺼내 봅니다.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나니 힘들었던 일도 희석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요. 좋았던 일이 더 생각납니다. 가끔 시집살이 이야기를 할 때 양념으로 대단하셨던 어머님 이야기하는 걸 어머님은 알고 계실까요? 어머님 떠나신 지 11년 되었는데 어머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머님 세대가 그렇잖아요. 일제강점기를 겪고, 6·25전쟁을 몸소 겪었으며 황무지나 다름없는 나라에서 결혼해 육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키고 재산 늘리고요. 어찌 감당하셨을까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전기도 없던 시절 모든 걸 손으로 만들고, 빨고, 불 때서 음식하고요. 그 어려운 시대에 자식들 키워내자니 강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면에서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상상이나 할까 몰라요.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를요.

가끔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수업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이야기해 줍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살기 힘든 세월을 겪으며 지나오셨는지요. 가만히 방망이를 보니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언젠가 딸이 물었습니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왜 끼고 사느냐고요. 그래서 말했지요.

“사는 게 바빠서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은데 이렇게 할머니가 쓰시던 물건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나잖아.”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엄마는 할머니 생각하는 게 좋아요?”

“이젠 밉고 좋고가 없지. 대신 잊으면 안 되겠지. 할아버지는 엄마도 뵙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만, 할머니 쓰시던 손때 묻은 유품을 보면서 가끔 할머니 생각을 해. 지나간 세월도 엄마의 역사인데 부정하면 안 되잖아. 이렇게 할머니 유품을 보면서 좋았던 생각을 떠올리면 좋잖아. 잊히지 않고.”

“그럼 나는 나중에 엄마 어떤 것을 간직할까?”

아들과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할머니를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어머님도 손주들은 “금동이야, 은동이야”하며 사랑하셨거든요. 지금도 추석과 설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추모공원 가는 걸 거르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빛바랜 방망이에 콩기름을 발라봅니다. 윤기가 흐르는 방망이를 벽에 걸어둡니다. 한때는 어머님 손에서 빨래를 다듬었을 방망이입니다. 어머니의 한이 방망이질에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이사를 하면 다듬잇돌 하나 사서 사촌 형님 드리고, 어머님 다듬잇돌 찾아와서 방망이와 짝을 맞추어야겠습니다. 돌절구도 찾아오고요. 어머님의 유품 다듬잇방망이를 보면서 어머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막내며느리 많이 의지하다 돌아가셨는데요.

어. 머.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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