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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女담] 오월을 보내며박윤경

문예 교육을 지도하는 ㄱ선생을 따라 장대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시절을 잘 못 만나 여자라는 이유로 배우지 못한 70~80대의 어르신들, 친정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분들과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한글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선생의 열정과 순수한 학생들이 뵙고 싶어 나섰다.

장대마을 회관에 들어서자 몇몇 분은 배를 깔고 숙제를 하고 있다. 지난주에 내준 숙제를 하지 못했단다. 초등학교 1학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번진다.

오늘은 ‘ㄱㄴㄷㄹㅁ’과 ‘ㅏㅑㅓㅕㅗ’의 자음과 모음이 만나 글자가 되는 ‘가지, 과일. 다람쥐’ 등을 따라 써보는 수업이다. 몇 분은 글을 읽을 줄 알지만 오랫동안 써보지 않아 잊어버렸단다.

두어 분은 성적이 좋다. 다른 분들은 따라서 쓰기 바쁜데 벌써 날짜와 이름까지 써놓았다. 이름 석 자를 보는 순간 아! 엄마의 편지가 떠올랐다.

결혼 초 안성에서 살았다. 농장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첫째 아들을 낳고 2년 후 직장을 그만뒀다. 퇴직금으로 돼지를 받아 입장의 허허벌판에 위치한 오두막농장을 얻어 돼지를 키웠다. 사람 구경도 어려운 벌판의 오두막집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창고가 너무도 허술해 돼지농장이 잘되긴 애초부터 무리였다. 

딸을 낳고 4개월 만인 5월 초에 이삿짐을 챙겨 시어머님이 계신 고향으로 들어왔다. 뜰에 부려놓은 초라한 이삿짐을 보신 친정엄마는 시어머님의 눈을 피해 뒤꼍에서 눈물을 훔치셨다.

며칠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몰래 다녀갔다면서 경대 서랍에 돈과 편지를 넣어뒀다는 것이다. 동생이나 아버지가 쓴 편지일 거라 여겼다. 봉투 속의 편지를 펴는 순간, 가슴이 옥죄어 오고 손이 떨렸다.

엄마가 쓴 손편지었다. ‘00이 봐여리’로 시작된 글씨는 내 이름만 올바를 뿐 자음과 모음을 짜 맞추며 해석해야 했다. 편지 한 장에 띄엄띄엄 쓴 글자는 몇 줄 되지 않았다. 어렵더라도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과 시어머님께 잘 하라며 건강도 챙기라는 당부였다.

엄마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외할머니가 재가하면서 엄마는 친척 집을 오가며 자랐다. 9살쯤 외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친자식들처럼 글공부는 엄두도 못 냈다. 동생들을 업고 어깨너머로 배운 공부가 전부이다. 그나마 대략 읽을 줄은 알지만 글씨를 써보지 않던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못난 딸을 위해 편지를 쓴 것이다.

쓰는 내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던지 편지지에 눈물이 떨어져 마른 자국이 보였다. 방바닥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이러구러 살다 보니 형편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58세의 그 가을을 넘기지 못했다.

가정의 달 오월에는 가슴이 아려오고 한 차례씩 호된 몸살을 앓는다. 살아계셨더라면 장대마을의 어머니들보다 더 글공부에 매진했을 것이다. 어쩌면 책도 내셨을 엄마, 오월이면 엄마가 그립고 더 많이 죄송하다.
 

   
 

박윤경
문예한국등단, 진천문인협회 회원,
대소창작교실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멍석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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