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나는 오늘도 산에 와 있다. 비 그친 초여름의 산길은 싱그러움이 더하다. 나뭇잎 사이로 빼꼼 들어오는 햇빛 또한 눈부시다. 야트막한 마을 뒷산 세 개를 지나쳐서 되돌아오는데 약 40분 걸린다. 나무가 울창한 이곳은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향긋한 솔향을 마시며 걷는 이 오솔길을 나는 좋아한다. 솔잎이 켜켜로 쌓인 숲길은 포장된 길을 밟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워 좋다.

어떤 때는 정신 줄을 놓은 사람처럼 맨발일 때도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이 노릇도 가능하다. 가만히 귀 기울여 걷다 보면 온갖 생명의 소리가 다 들려온다. 바람 소리·물소리·이름을 알 수 없는 각양각색의 새소리도. 이 좁은 공간에 이렇게나 많은 새가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들도 인간 세상처럼 의견일치가 잘 안 되는지, 날마다 불협화음이다.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남에 둥지에다 알을 낳는 뻐꾸기 소리가 오늘따라 구슬프다. 회한의 울음이런가. 갑자기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주의가 부산스럽다. 청설모가 인기척에 놀랐는지 상수리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몸을 숨긴다.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포장된 길 위를 걷고 있다. 지나쳐 온 산 일부가 헐리고 전원주택단지로 조성해놓은 공터다. 햇볕이 따갑다.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잰걸음을 친다.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로 짙은 분홍색의 외래종 꽃 잔디가 곱게 올라와 발길을 잡는다. 어쩌다가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 우리 집 화단에 옮겨 볼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뿌리 내린 그곳이 본향이라 여기며 발걸음을 옮긴다.

두 번째 산 초입이다.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불길한 생각에 주위를 살피니 역시나 내 예상이 적중한다. 묘지를 이장 중이다. 펼쳐진 한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자들이 엎드려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아! 이를 어쩌나. 못 볼 것을 본 양 황급히 발길을 돌려 그 길을 내려온다.

윤달이 있는 올해는 유난히 산 작업이 많다. 윤달은 모든 잡신이 쉬는 달로 손이 없는 달이란다. 윤년을 핑계로 평소 어렵게 여기던 산 일을 손보는 곳이 많아 이런 현장을 수시로 목격한다. 이장 중인 묘는 옛날 권세가라는 소문이 있다. 호화스럽고 거대한 묘지를 어찌하여 파묘를 하는지 궁금해진다. 사실 이제는 장묘문화도 많이 변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또, 자연 친화적인 문화로 빠르게 변모해가고 있으므로 그다지 궁금해 할 일도 아니다.

산길을 피해 마을 뒷길로 들어섰다. 고추밭에서 노부부가 언성을 높여가며 티격태격이다.

“똑바로 해보소.”

“그렇게 잘하는 당신이 해봐요.”

농부라면 일터에서 흔히 겪는 풍경이다. 최고의 재미나는 구경거리는 싸움이라 했던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몇 걸음 가다 뒤돌아보니 언제 싸웠냐는 듯 밭둑에 나와 정답게 마주 앉아 있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요즘 들어 생각만큼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라고 하시던 어른들의 말씀을 요즘 내가 자주 쓴다. 어느새 나도 그 나이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며칠 전에도 마늘과 양파, 감자를 캐고 몸살을 앓았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일만 해야 할 텐데, 늘 벌려놓고 힘에 부치면 아프다고 짜증내기 일쑤다. 이제는 일 욕심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된 듯싶다.

마을을 벗어나 세 번째 산에 들어섰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인위적이지 않고 원시적인 느낌이 나는 오르막길이다. 호젓함이 좋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다. 누가 짓밟고 갔는지 밑둥치가 꺾인 내 키보다 더 큰 자리공 나무가 길을 막고 누웠다. 강자의 횡포를 보는 듯 처참하다. 은행잎과 독초인 이 자리공 나무뿌리를 숙성시켜서 친환경 살충제를 만들어 쓰던 때도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많은 양의 살충제를 만들어 진딧물이나 나방 유충을 없애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무 번거로워 친환경제제를 사용하고 있다. 너무나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쉬운 쪽을 택한 것이다.

자리공 나무를 길옆으로 밀쳐내고 보니 산딸기가 지천이다.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울까.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하며 탐스러운지라, 선뜻 다가가 한 움큼 따 입에 넣어본다. 아직 덜 익었다. 보기에는 농익어 보여도 속이 차지 않은 나와 어쩜 그리도 같을까. 입안에 신맛만이 그득하다.

다시 길을 걷는다. 늙은 소나무 앞에 서 있다. 소나무를 일러 ‘초목 군자’라 했던가! 갈라지고 터진 껍질이 모진 풍상의 세월을 다 드러낸 듯해 측은지심이 인다. 살포시 안아본다. 엄마의 품인 듯 따뜻함이 전해온다. 이것이 바로 내 일상의 소확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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