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계순

[한국농어민신문] 

‘장’은 지적장애인이다. 말이 어눌하여 그녀와 원활하게 소통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체적인 부분은 비장애인과 큰 차이가 없어 활동하는 데 불편이 없다. 나이는 40대 후반이지만, 인지력은 10대에도 못 미친다. 이곳에 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혼자서 어딜 가 본 적이 없어 사회생활에 제약이 따른다.

시설에서는 정부 시책에 따라 그들의 자립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시설 특성상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꼭 시설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의사 표현이 부족하여 그동안의 관찰 결과를 토대로 서비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삶의 주인이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프로그램 참여 대상자는 장애 정도가 낮은 ‘장’과 비슷한 이용자들이다. 자립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몇 분만이 참여하고 있다. 자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인 직업을 구했다. 꼭 돈을 버는데 목적이 있지는 않다. 국가에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게 지원이 된다. 장애인 연금은 개인 통장으로 입금이 되고, 생활에 필요한 자금은 시설에서 받아 지원한다. 경제 활동을 함으로서 나도 필요한 존재임을 안다는 것, 살아가는데 큰 동력이 되는 자존감 향상을 위함도 있다.

그들이 직업 재활 시설로 출근한 지 삼 년이 지났다. 첫 출근하는 날, 보호자 없이 나서서 몇 시간씩 생활한다는 것 때문인지 불안한 빛이 역력했었다. 엄마 치맛자락이라도 잡아야 안심이 되는 4살 박이 아이 같았다. 그랬던 그녀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좀 더 예쁜 옷을 고른다. 직장인답게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밝은 얼굴로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한다. 아직은 담당 교사인 사회복지사의 손길이 많이 갔지만, 직업을 갖기 전보다 훨씬 자신감 있고 활발해졌다.

가끔 작업장으로 그녀를 보러 간다. 집 밖이라 그런지 손을 맞잡고 서로를 무척 반긴다. 단순한 작업이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맡은 일을 전문가답게 처리하는 것이 보인다. 어린아이가 성년으로 성장한 듯 대견하고 기특하여 가슴이 먹먹하다. 시설에서는 직업을 자립의 꽃이라고 한다. 정부, 후원자, 사회복지사 등 외부로부터 받기만 한 삶에서 보통 사람처럼 노동을 해서 내 것을 만든다.

일을 갖기 전, 그녀는 밥 먹고 신변 처리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목욕하는 것도 양치하는 것도 사회복지사가 지원해야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주저함이 없고 당당하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았을 것이고 자리를 비우면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존재가치를 알았을 것이다. 자연히 이곳 생활에서도 의타심이 줄었다.

다음 과정으로 체험 홈이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을 익히기 위함이다. 체험 홈은 이곳을 벗어나, 아파트나 빌라 등 가정집과 같은 곳에 입주해 생활 한다. 이곳에서도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지만, 직접 시장을 봐 와서 음식을 조리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목욕탕에 간다. 의·식·주 외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익힌다. 그동안 사회복지사가 많은 부분을 지원했지만 스스로 이루게 한다. 물론 활동 보조인이 있고 관리하는 센터도 있지만 많은 부분 당사자가 주인이 되게 돕는다. 

드디어 그녀를 체험 홈 장소인 아파트에 내려놓고 왔다. 당일 아침 설렘과 기대로 들떠 있던 모습과 달리 직업 재활 시설에 첫 출근할 때의 낯빛이다. 손을 흔드는 모습에 촉촉한 마음을 숨기고 용기를 보냈다. 이번에는 삼일이지만 차츰 늘여갈 계획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당사자가 원할 때 가능하다. 비록 걸음마에 불과하지만, 의지가 있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것을 믿는다.

앞으로 지역사회 모습은 많이 달라진다. 정부의 정책에 변함이 없다면 우리가 평상시 다니는 음식점이나 마트, 도서관 등, 많은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쉽게 만나게 된다.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미 선진국 여러 나라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장애인의 자립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도 다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그들이 어디에서 생활하던,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사람살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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