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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가을은 깊어지고박래여

컨테이너 박스를 차에 싣고 남편과 함께 감산으로 간다. 주홍빛이 돌기 시작한 단감은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여름 내내 남편의 땀으로 키워낸 사랑덩이다. 단감 하나를 뚝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깨물었다.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남편은 내일 작업할 단감나무 아래 컨테이너 박스를 몇 개씩 배치하느라 바쁘다.

“올해는 추석에도 바쁘게 보냈는데 앞으로 한 달은 더 정신없겠다.”

“농사꾼 만나 고생 많소.”

남편의 한 마디에 지난 추석 연휴 열흘을 생각한다. 알밤도 주워야지, 산초도 따야지, 단감도 따야지, 성묘도 가야지, 친인척 인사도 다녀야지, 선물도 준비해야지, 음식도 준비해야지.  그 긴 추석 연휴도 동동거리며 바쁘게 보내다보니 금세 끝났다.

남편은 탐스러운 주황빛 단감을 만지작거리며 감회에 젖는다. 나는 감나무 사이에 있는 밤나무 밑을 기웃거린다. 갈색 밤송이 중에 온전한 것을 찾아내 발로 쓱 문지른다. 밤새 떨어진 것처럼 알밤이 톡 튀어나온다.

“밤송이가 고슴도치 같아. 근데 동서는 그 많은 밤을 어떻게 간수해뒀을까?”

해마다 단감 때문에 찬밥 신세인 알밤은 추석 쇠러 온 객지 식구들이 줍는다. 추석이면 알밤과 대추, 본디를 섞어 찰떡도 만들고, 송편도 빚고,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도 만들고, 콩 타작을 해 손 두부도 했었지만 올해는 다 접었다. 도토리를 주울 짬도 없었고, 콩 농사도 접었다. 음식도 간소하게 했다. 동서가 장만해 온 특별식은 끼니마다 식구들 입맛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생선회와 탕국, 쇠고기 찜, 곤드레 비빔밥, 수육, 만둣국 등, 간소한 특별식에 새콤한 무김치는 제 맛이었다.

“올 추석에는 동서가 참 고마웠어. 동서는 음식 솜씨도 좋아 그치?”

“당신도 좋잖아”

남편의 말은 맞는 말이다. 우리 집은 상노인 두 분이 건재하기 때문에 추석이면 가족이 많이 모인다. 하여 대식구의 음식을 장만하다보니 절로 손맛이 생긴 것이다. 그러던 명절음식이 간소화 되었는데 동서의 특별식 덕분에 가족 간의 정이 더 두툼해지니 고마울 수밖에. 가족이란 자주 만나야 정이 드는 법이지만 명절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추수할 것이 사방팔방 널린 계절, 객지 식구들 떠날 때는 싸줄 것이 많아 좋았다. 밤, 단감, 풋고추, 누렁호박, 애호박, 가지, 오이, 참기름 등등, 곳간에 갈무리 해 들인 것이나 아직도 논밭과 과수원에 탐스럽게 자라는 것이나. 돈으로 치면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객지의 형제들에게 고향의 넉넉한 정을 안겨 보내고 돌아설 때는 뿌듯함이 절로 차오른다. 점점 더 깊어지는 가을 때문인가. 추석 연휴를 돌아보니 아직도 남은 그 여운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박래여
전원생활체험수기 공모 대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8회 여수 해양 문학상 소설 대상, 현대 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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