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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갈 곳 없는 사람들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남편 친구들이 비닐하우스농장으로 놀러 온다는 전갈이 왔다. 한 달이면 서너 번씩 왕래하는 일선에서 물러난 퇴직자다. 한 때는 성공에 대한 욕구로 오로지 일에만 매진했건만, 이제는 어디에서건 퇴물 취급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한숨 덩어리, 혼자 밖에 내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더 보탠다면 ‘삼식(三食)이’ 등등.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다. 이래저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리니 갈 곳이 없는 중년 남자들이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다. 한국전쟁 직후에 엄청나게 많이 태어난 세대들로 이전세대와는 다르게 그래도 교육의 혜택을 받음으로 인해, 국가 경제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세대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는 가난을 극복했지만, 은퇴와 함께 다시 찾아온 빈곤과 고독감으로 마땅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이 거리에서 방황하며 겉돌고 있다. 58년 개띠와 그 전후의 나이들. 이들의 수명은 백세 시대를 지나 그보다도 20~30년을 더 살 것이라고 한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일손을 놓아야 하는 그 많은 은퇴자는 앞으로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자못 걱정스럽다.

그래도 운이 좋은 친구 둘은 간이버스정류장에서 매표원으로 일하고 있다. 비록 월급은 적지만, 일할 수 있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아주 대단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대기업의 장급이었고, 행정직 공무원이었던 친구들이다. 그들은 모이면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일터가 있는 자네의 삶이 한없이 부럽네.”

한 때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그렇게 고루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세상이 변하여 우리를 이렇듯 부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직업에 대한 귀천도 또한 사라졌다. 어떤 일이든지 소중하지 않은 일이 있을까.

예전과는 다르게 자기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어느 분야건 직업인으로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 터. 무엇이든지 귀하고 천함은 본인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나도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야 명예퇴직 당할 일도 정년퇴직할 일도 없어서 참 다행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평생직장이 보장돼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이보다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주위에도 귀농과 귀촌하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젊은이들이 점차로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도 귀향하여 최신식 시설 하우스를 짓고 처음으로 오이농사를 시작한 지인의 부름을 받고 농장을 들른 적이 있다.

대규모의 농장이었다. 경험도 없는 분이 이렇게 크게 투자했나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철저한 체험 또, 준비과정이 있었음을 알고는, 인생 2모작을 실천하는 그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며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도 꽤 인기가 있다. 알고 보니 중년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철저한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자연의 품에서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일 터.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자연의 흐름에 내맡기고,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갈 곳 없는 중년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이다. 호박이 예쁘게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 농장으로 김치를 가지고 들어서니 고기 굽는 내가 진동을 한다.

“제수씨! 골칫덩어리들 또 왔습니다. 이 애물들을 어여삐 봐주십시오.”

왕년의 김 과장이 두 손을 비비며 너스레를 떤다. 사실이지 골칫덩어리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퇴직 없는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이상분
계간 좋은수필 신인상, 좋은수필 작가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밥상일기’ 기고,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서예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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