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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네 바퀴로 가는 차이수안

복숭아밭 소독을 했다. 방제기에 약물을 타서 한 이랑 돌고 나오는데 뒷부분에서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한 번 더 우당탕하더니 방제기가 왼쪽으로 기우뚱하며 푹 주저앉고 말았다. 기겁을 하고 돌아보니 왼쪽 뒷바퀴가 빠져 저만치에서 뒹굴고 있었다.

하필 농기계 업체가 쉬는 일요일에 일이 난 것이 난감했다. 걱정이었다. 전화하면 얼른 받아줄지, 바로 고칠 수는 있을지, 못 고친다면 방제기에 담긴 1톤에 가까운 약물은 어찌해야 할지 등등.

걱정과는 달리 업체 사장님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와 주었다. 느닷없이 바퀴가 빠진 것은 봄에 수리할 때 바퀴 볼트를 덜 조인 것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다른 곳은 이상이 없어 바로 바퀴를 끼웠다. 바퀴 하나가 없으니 꿈쩍도 하지 않던 기계가 바퀴를 끼워 주자 그 육중한 몸체가 힘도 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전진했다. 네 바퀴의 방제기를 몰고 나는 차질 없이 소독할 수 있었다.

소독을 마친 후 아기 복숭아를 솎는데 아이들이 몰려왔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큰딸 내외, 제 언니보다 먼저 결혼한 작은딸 내외, 감기 때문에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손녀까지…. 보나 마나 아이들은 휴일 아침잠을 느긋하고도 달콤하게 즐겼을 터였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겨우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어미에게 달려 온 것이다.

바리스타 큰딸이 준비해 온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방제기 바퀴가 빠진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직접 겪은 나보다 더 많이 놀랐다. 방제기가 뒤집히는 사고가 났으면 어떡할 뻔했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가정이 오늘처럼 안정적이며 다복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음성이라는 곳에 새 터전을 마련한 10년 전을 돌아본다. 우여곡절 많던 그때 내 상황은 마치 외발로 가는 자동차처럼 위태롭고 아득했다. 여자인 내가 혼자 넓은 과수원을 일구는데 몰두한 것은 어쩌면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달리지 않으면 멈춰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 말 것을 알았으니까.

비록 외발이지만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고 걸어야 할 길을 잘 걸어온 덕분일까. 이제는 두 딸은 물론이고 사위와 손녀까지 함께하니 부족했던 바퀴 셋을 다 얻은 느낌이다. 드디어 우리 가정도 네 바퀴가 있을 자리에 정확하게 자리 잡고 제 역할을 다하며 나아가는 안전한 자동차가 된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네 바퀴로 균형을 유지하며 안정된 삶을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부족한 바퀴로 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 상황에 부딪혀보면 당연하게만 느껴지던 네 바퀴의 고마움을 마음 저리게 깨닫는 것이다.

오랜 세월 소망해온 네 바퀴로 나아가는 가정. 더러는 티격태격하며, 그러나 염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실은 차가 안전하게 길을 간다.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회장 역임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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