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효순

[한국농어민신문]

회관 옆 팽나무의 매미는 진작부터 노래자랑 중이다. 관객이 있건 없건 별로 개의치 않나보다, 해 질 녘까지 즐겁단다. 매미들과 달리 며칠 전부터 내 일상에 비상등이 켜졌다. 밭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넷이나 되는 말썽장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려면 밭을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마쳐야 한다.

집안 대청소는 기본이고 이부자리 손질까지 해야 세상에서 제일 반짝 반짝 빛나는 보석들을 맞이할 준비가 끝이 난다. 그중 먹거리가 제일 신경 쓰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본다. 초딩 입맛에서 살짝 어른 입맛을 알기 시작한 손자도 있으니 다양한 요리 실력이 있어야 장장 열흘을 버틸 수 있다.

냉동실 점검을 하고 시장을 보아 칸을 채우며 옥수수를 삶아 여러 뭉치로 냉동을 시키면서 이만하면 됐겠지. 자신감에 뿌듯하기까지 하다. 드디어 만나기 전날 밤, 마음은 설레는데 몸은 벌써 물 먹은 솜 열 근이다. 마음을 다잡고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요가 자세로 몸을 다스린다. 

“할머니~~~~”

드디어 즐겁고 힘들고 어려운 대 장정 여름방학이 대산면 감성마을 일길 이십칠 번지에서 시작되었다. 아들네 아이 둘, 딸네 아이 둘, 아이들은 왜 지치지 않은지, 도통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쟁이들의 언어와 행동에 에너지가 금방 바닥이 난다. 호기심 많은 손녀의 의문부호 풀어주기와, 하루에도 열두 번씩 ‘흔한 남매’들의 전쟁 놀이터에 나도 한몫 끼어야 끝이 나기에 할머니의 특권을 부리기도 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다. 

그나저나 삼복중인 날을 너무 덥고 에어컨을 종일 틀다보니 머리까지 아프다 어떻게 해야 무사하게 순풍에 돛을 달까. 해거름 산책은 모기가 환영을 하고 마을에는 아쉽게도 계곡이 없으며 찰랑하게 물이 흐르는 냇가도 없다. 바닷가나 수영장이 제격인데 수영장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고 바닷가는 데리고 가기가 껄적지근 하다.

할 수 있는 놀이도 한정이다. 할아버지와 장기 두기는 손자들이 어렵고 체스 두기는 할아버지가 어려워한다. 젬불로, 웡키, 보드게임 등 장난감을 잔뜩 가져다 놓았지만 아이들은 왜 한 장남감이나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지 알면서도 아쉽다. 애써 짜놓은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아니면 놀면서도 심심하다고 외친다. 

손자들을 수영장으로 데리고 가면서 집에 있던 이동식 수영 장비를 마을 애기가 있는 집에 주어 아쉬워하다가, 궁여지책으로 김장용 고무다라를 내놓았다. 커다란 고무다라 통에 물을 가득 채워 아이들을 각각 들여보냈는데 효과가 만점이었다. 상상외로 싫증을 내지 않았다. 물총으로 온 마당을 뒤집어 놓아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동생, 언니, 오빠를 실컷 쏠 수(?) 있어 즐겁단다. 일단 자기 집(개인용 고무다라)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터치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놀기 때문에 아주 만족해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마당을 꽉 채우고 십년 채 살고 있는 고양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렇게 잘 놀다가 어느 날  딸네 아들과 아들네 아들의 언쟁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다투다가 누가 잘못했는지 내게 심판을 하란다. 두 녀석의 눈은 나를 향해 공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진지함이 가득하다. 나이가 동갑인 이 손자들에게서 어떻게 지금의 위기를 넘겨야 할지 머릿속이 어지럽다. 내 목소리는 한껏 옛날 할머니들 음성으로 바뀌었다.

“있잖아~그러니까 옛날 조선시대 황희정승이 길을 가다가 밭을 가는 소 두 마리를 보았는디~” 시간을 두고 최대한 말을 뭉그적거린다.

“아이구! 할머니 이야기 말고~” 

똑같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손자들 목청에도 나는 짐짓 안 들린 척, 

“아~ 그러니까 황희정승이 소 주인에게 두 마리 소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물었것다” 아이들은 ‘야야 우리 그만 우리끼리 화해하자 할머니 심판 기다리다가 날 새겠다.’ 흐흐 작전 성공이다. 요놈들아 그러니까 그런 어려운 부탁은 하는 게 아니란다. 시원한 수박을 한 접시 들고 아이들을 불러들인다.

“자 맛있는 간식 시간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금방 비행기로 가져온 생 망고 주스도 있습니다.” 우르르 아이들이 뛰어온다. 행복도 함께 졸랑졸랑 따라온다.

종일 뛰고 움직이는 손자 넷을 한 자리에 뉘이고 가만히 내려다본다. 함께 도쿄 올림픽 축구를 보면서 환호성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애국을 배우는 손자들이 대견하다. 코로나는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지만 우리는 또 거기에 맞게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나간다. 손자들은 벌써 내일이면 모두 떠난다. 고무다라 물놀이가 얼마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잠깐 스마트폰 기계에서 멀어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올여름 고무다라 풀장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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