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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어머니의 행복이재선

[한국농어민신문]

제삿날이 다가와서 마트에 갔다. 제사가 다가오면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재래시장에서 살 것이 있고 마트에서 살 것이 있어 부지런히 다니면서 장을 본다. 메모장을 꼼꼼히 체크하는데 커다랗게 ‘다식’이라고 쓴 글씨에 시선이 머문다. 혹시라도 잊을까 봐 특별히 더 크게 쓴 것 같다. 순간 시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송홧가루가 날리는 계절에는 더 그립다.

우리 아파트는 유달리 소나무가 많다. 송홧가루가 날릴 때는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다. 송홧가루가 비포장 시골길에서 트럭이 지나간 다음에 휘날리는 흙먼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도 나는 창문을 닫지 못하고 열어둔다. 아침저녁으로 닦아도 마루에는 노란 송홧가루가 흙먼지처럼 널려있기만 싫지가 않다. 어머니는 송홧가루 다식을 유난히도 잘 만드셨다.

어머니는 소나무 밑에 포장을 펴고 먼지처럼 날리는 송홧가루를 모아 다식을 만드셨다. 조청은 가을에 고아 놓는다. 쌀을 볶아 빻고 깨도 볶아 빻는다. 송홧가루가 준비되면 조청에 반죽한 다음 다식틀에 박으면 맛도 있고 보기에도 좋은 다식이 완성된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콩다식을 잊지 않고 만들어 주셨다. 예쁘게 잘 만든 다식은 꼼꼼하게 포장해 냉동실에 보관한다. 제삿날이면 우리는 어머님이 정성껏 만드신 다식을 맛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제사를 신앙처럼 안고 사셨다. 며느리는 제사를 잘 챙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봄이 되면 고사리를 꺾어서 바구니에 널어 말렸다. 제사 때 쓸 고사리에 혹시 벌레 같은 불순물이 들어갈까 봐 바구니에 망까지 씌우셨다. 시댁은 종갓집이라 다달이 제사가 있었다.

어머니는 제사가 돌아오면 일주일 전부터 준비하셨다. 쌀을 빻아놓고 떡고물도 만든다. 도라지도 손질하고 제사에 쓸 재료들을 하나씩 미리미리 준비하신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제사에 정성을 들이셨다. 힘드실 것 같아 걱정하는 며느리에게 당신이 제사음식 차릴 수 있을 만큼은 건강하니 얼마나 좋으냐며 흐뭇해하셨다.

명절이 되면 과일 선물이 들어온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신문지로 싸고 비닐봉지에 넣어서 상하지 않게 냉장고에 보관한다. 결혼해서 십 년쯤 살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머니가 하시던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다달이 있는 제사 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절약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어머니는 특히 할머님 제사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 어머니를 친딸처럼 아껴주셨다며 할머님이 평소 좋아하신 음식을 골고루 챙기셨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며느리인 내게 다 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고 하셨다. 동네에서 제일 좋은 시어머니인 분이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은 다달이 있는 제사 때문이다.

나는 제사 때문에 특별히 불평하지 않았다. 친정도 제사가 많은 종갓집이었기 때문에 시댁의 많은 제사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내 자식들에게 어른을 공경하고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다고 오히려 좋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차례 준비를 도와주는 며느리를 예뻐해 주셨으며, 자상하고 인정도 많으셨다. 제사 다음 날은 동네 어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다. 분주히 돌아다니는 내게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싫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어머니 제사가 돌아온다. 며느리 살림살이 걱정 덜어 주려고 만 가을에 돌아가셨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넉넉하다.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되었어도 부끄럽게 떡이나 다식은 만들 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정성껏 만든 다식이나 떡을 꼭 제사상에 올릴 것이다. 제사가 며느리의 미덕이고 기쁨이라 여기신 어머니! 시절이 변했으니 나도 언제까지 어머니 뒤를 이어 제사상을 차릴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할 때까지 정성을 다할 것이다.

잘해도 잘 못 해도 늘 나를 예뻐해 주시던 어머니, 아직도 서툰 나를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며 우리 며느리 정말 예쁘다며 웃으실 것만 같다.

/이재선 농민문학 신인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음성문인협회 분과장,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사무국장, 농민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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