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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금잔디 미용실박윤경

[한국농어민신문]

지팡이를 짚고 어정어정 걷던 어머님의 발걸음이 오늘은 유모차 바퀴만큼이나 빠르다. 함박웃음이 가득한 표정에선 이미 멋쟁이로 변신했다. 기운 또한 어찌나 넘치시는지 엉덩이를 받칠 새도 없이 턱이 높은 자동차에 가볍게 오른다. 구순을 앞둔 어머님을 모시고 미용실로 향한다. 면 소재지로 들어선다. 옛 구말장터의 중심가에서 우측 골목으로 접어들면 낡고 허름한 간판이 붙은 미용실이 보인다. 어머님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한 분은 머리를 말아 수건을 뒤집어쓰고 있고, 한 분은 머리를 자르는 중이다. 이웃 동네에서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이 꼭두새벽부터 오셨단다.

오랜만에 뵙는 원장님의 손놀림이 예전과는 판이하다. 왼손이 파뿌리 만큼씩의 머리카락을 쥐려는 찰나 살갑게 떨다가는 움켜쥔다. 가위를 든 오른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커트 솜씨는 정교하고 차분하다. 정원사의 손길 따라 나무가 깔끔하게 다듬어지듯 가위질이 지나간 자리는 정갈하다.

어머님을 한쪽 의자에 앉히고 미용실을 둘러본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를 따라 들락이던 그때나 내부는 별반 바뀐 게 없다. 한쪽 벽면에 바라밀다 경이 걸려있는 것도 그대로다. 딱지 장만한 크기의 타일로 붙인 머리 감는 개수대 역시 원장님만큼 늙수그레한 모습 그대로고, 의자 밑에 너저분한 상자가 숨어있는 것 또한 여전하다. 가정집에서 쓰는 큰 둥근 소쿠리에 파마를 말기 위한 롤과 도구들이 담겨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리라는 단어에 앞서 조금은 심란해 보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면 엉덩이가 편하고 사랑방이 따로 없다. 누군가 먼저 이 동네, 저 동네 소식을 주고받다 보면 면내 소식통은 다 듣게 된다. 그 사이 원장님이 머리를 자르고 나면 손님 중 누군가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어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수건을 모아 세탁기를 돌려줄 것이다. 그러다 점심때가 되면 원장님은 국수를 시킬 게 분명하다. 멀리서 오는 손님에게 배를 굶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양푼 그득한 국수는 사랑방 손님들의 든든한 요기이자 외식이 된다. 손님 중 한 분이 설거지하는 동안 다른 이는 바깥에 문지기처럼 서 있는 빨래 건조대에 수건을 널어주는 것도 여전할 것이다. 원장님의 손놀림 따라 이야기도 따라가고 허리를 좀 더 펼 수 있는 할머니가 옆에 서서 롤과 고무줄을 건네주다 보면 한세상 살아내는 이야기는 소설책 한 권을 엮는다.

금잔디 미용실은 늘 농촌 할머니들로 붐빈다. 그렇다고 하루에 몇 십 명의 손님을 받는 건 아니다. 많아야 예닐곱 명을 넘지 못한다. 새 아침부터 손님이 문을 두드리면 일과가 시작된다. 올해 78세의 금잔디 미용실 원장님은 이곳에서 잔뼈가 긁은 토박이다. 결혼과 함께 58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붙박이처럼 살아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태어나던 해 원장님은 이곳 남자를 만나 혼례를 올렸고 동시에 미용실을 차렸다. 호기심에 미용실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금잔디라는 깊은 뜻이 있느냐 여쭤봤다. 생각보다 쉽고 간단한 답이다. 미용실 가게 안마당에는 잔디가 심겨져 있는데 양기가 맑고 아늑했단다. 상호를 고민하던 차 간판장이가 오더니 마당의 잔디가 잔잔하면서도 빛이 난다며 ‘금잔디’가 어떠냐는 제안에 고민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장님의 일생은 안마당의 금잔디만큼 잔잔하지 못하다. 여자 팔자란 남자를 잘 만나야 편하다. 아저씨라고 불렀던 원장님의 남편은 기생오라비는 저리 가랄 만큼 인물이 좋고 신체가 훤칠하다. 어렸을 적이지만 아저씨가 신작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가면 미루나무잎이 더더욱 반짝일 만큼 길이 훤했다. 그러니 주위의 다방에서 일하는 이들과 여인네들이 호들갑을 떨고도 남을 일이다. 평생을 남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사이 세월은 흘렀고, 아저씨가 방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뒷받침의 돈은 빛이 되어 원장님의 몫으로 남아 아직도 갚아나가고 있다. 질긴 실타래의 뭉치를 하루만큼씩 잘라내며 갚고 있는 원장님은 그나마 미용기술을 배웠기에 든든하다니 마음은 천상 금잔디이다.

단골손님은 인근에서 평생을 흙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살아온 고만고만한 할머니들이다. 한때는 마을마다 돌며 회관에서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했던 어릴 적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어머니들이 한복을 곱게 입고 파마를 말았었는데 동네잔치 같았다. 생전에 친정엄마도 단골이셨다. 친정엄마보다 세 살이 적은 원장님과는 형님 동생 하며 편히 지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원장님도 중 할머니다. 연세가 많은 노장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데려다 줘야만 미용실을 찾을 수 있다. 그래도 구순을 앞둔 시어머님부터 머리의 파마기가 없으면 자존심이 추락한 것 같단다. 원장님의 손끝을 거쳐야만 여성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니 타고난 미용사의 장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용사를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원장님이 받는 수고비는 파마와 염색을 합해 3만원이다. 개인적으로 그간의 가슴앓이를 머리카락 잘라내듯 삶의 지친 한을 채워가는 원장님은 이제는 형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만두지 못하겠단다. 이웃 마을 누구누구네 형님들의 소식이 없으면 더럭 걱정된다며 미용기술 덕에 많은 분과 소통하는 게 제일 좋단다. 어디 원장님뿐이겠는가. 가위손 덕에 농촌 할머니들은 미용실을 찾을 때는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온다. 잎사귀 떨어진 앙상한 싸릿가지가 축 늘어진 것처럼 추레하게 들어왔다가도, 파마를 끝낸 후면 꽃이 핀 것 같으니 얼마나 생기로운가.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 했고 늙어도 여자다. 노장의 자존심에 늘 잔잔한 함박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소원한다.

/박윤경 문예한국등단, 진천문인협회 회원, 대소창작교실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멍석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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