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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금광을 묻었습니다김단이

[한국농어민신문]

요즘 금값은 정말 금값입니다. 많이 비싸더라고요. 액세서리를 잘 하고 다니는 편도 아니고요. 하고 있으면 걸리적거리기도 합니다. 단순한 반지는 한 번 끼면 빼는 걸 잊어버리는지 계속 끼고 있다가 신경이 쓰이면 빼놓고는 끼어야 하는 계기가 생기기 전까지 다시 찾지 않습니다. 결혼 패물도 어디선가 쿨쿨 잠을 자고 있겠지요. 액세서리를 잘 구입하지 않는 편이라 값나가는 반지나 목걸이도 없습니다. 결혼 패물 말고는요.

제 생애에 금광을 두 번 묻었는데요. 1997년 IMF 금융위기 시절 금 모으기 할 때 결혼예물 중 순금 반지와 목걸이, 팔찌, 아이들 돌 반지까지 모두 내 놓았습니다. 순금은 모두 내놓았지요. 나라가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때 제 금광을 묻었습니다. 휜 나무가 고향을 지킨다고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18K·14K만 살아남았습니다.

어머니께 금반지 다섯 돈을 해드렸습니다. 특별한 기념은 아니었는데요. 예쁜 장미꽃반지였어요. 금은방에 갔다가 노란 장미꽃반지가 첫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도 그다지 액세서리에 연연하지 않으셨는데요. 연세가 있으시니 노인정에 가시더라도 민 손은 싫으셨나 봅니다. 값나가는 반지는 아니었어도 제가 해드린 18K 반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꼭 끼고 계셨습니다. 순금반지는 끼고 생활하다 보면 닳아서 안 된다 하셨지요.

노란 순금 장미반지를 “예쁘다!”하시며 보름은 약지 손가락에 끼고 계시다가 저에게 맡기시더라고요. 어머님은 당신의 통장과 패물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잘 두면 찾지 못하고 잃어버릴까 봐 그런다면서요. 시누이가 어머님에게 해드린 순금 목걸이와 팔찌, 어머님이 장만하신 순금 반지를요.

장미 반지를 해드린 지 일 년쯤 되었을까요. 어머니가 저를 부르시더니 장미반지를 찾으셨습니다. 어머니가 반지를 끼고 싶으신가 보다 하고 드렸는데요. 다시 제 손에 꼭 쥐어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고맙다. 너 해라. 네게 더 어울린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다.”

장미 반지는 그렇게 제게 왔는데요.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지요. 내친김에 똑같은 장미 펜던트로 목걸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장미 반지와 목걸이가 하나의 세트가 되었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화려했습니다. 그래서 보석함에서 주로 잠을 잤지요. 보석함에서 잠자고 있는 순금 장미 목걸이와 반지 세트를 가끔 열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마을 어르신이 어머니가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제 손가락에 끼어 주시며 “누구에게도 주지 말고 자네가 끼게”하셨지요. 지금도 가끔 어머니 반지를 끼어 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제가 맡고 있던 어머니 패물을 꺼냈습니다. 시누이가 해준 순금 목걸이는 시누이에게 주었습니다. 시누이는 아니라며 이제는 언니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어머니 흔적이 담긴 패물 어머니 생각하며 갖고 있으라고 시누이 손에 꼭 쥐어주었습니다.

살다 보면 굴곡이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에게도 시련이 왔습니다. 남편이 무리를 해서 농사를 확장했지요. 농작물도 그때그때 시세가 다릅니다. 시세가 아무리 좋아도 내 농작물을 수확할 때 시세가 좋아야지요. 채소는 날씨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라 풍년이 들어도 시세는 하락하고요. 기상이변이 생기면 작물도 생육에 지장이 있어 시세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지요.

농자금으로 대출을 엄청스레 받아놓고는 입 꾹~ 다물고 있던 남편이 일이 터지고서야 이실직고했습니다. 농자금 대출이자는 저렴한 편에 들지만 이자 납부 기한이 지나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금붙이를 모두 꺼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금값도 하늘을 치솟을 때였습니다. 순금 한 돈에 6만원대에 구입한 금값이 26만원대였으니까요. 미련 없이 처분하여 500만원이 넘는 이자를 갚았습니다. 시원섭섭했지요. 그리고 다시는 금붙이를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엄마 마음이 허전할까 걱정되어 가끔 쥬얼리 장신구를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다고 구시렁거리지요.

지금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추억의 금광입니다. 금광을 묻어버린 일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진첩을 보다가 기념으로 찍어두었던 장미 목걸이와 반지 사진을 보았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잊혀진 패물보다는 어머니가 먼저 떠오르네요.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끼시던 반지 제 손가락에 있습니다. 어머니, 금광을 묻었습니다. 어머니도 서운하시지요?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생각나지요. 어머니, 그래도 마음이 편한 게 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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