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새날이 밝아 왔지만 그다지 희망적이지가 않다. 벌써 1년이 다 돼가는 코로나 19와의 전쟁 때문이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전파력이 대단타 하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를 더 불안케 하며, 그나마 기대했던 백신 개발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농부는 묵묵히 밭을 갈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급식이 중단되어 친환경 농가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비닐을 교체하고 고랑을 정리해가며 호박 정식을 끝냈다. 작년만 해도 이웃들과 품앗이로 2시간 만에 일을 끝냈었는데, 올해는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에 따라 외국인 직원 두 명과 넷이서, 반나절이 훨씬 지나서야 일을 끝마쳤다. 품앗이 때는 하지 않던 일이건만 오랜만에 일을 해서인지 옷이 흠뻑 젖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편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니 탄내가 먼저 반긴다. 가끔 잘 태우곤 하여 곧바로 주방과 베란다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아침 일찍 나갔던 터라 빨래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며 집안일을 하느라 한참을 종종거렸다.

“조카! 큰일 났어. 불났나 봐. 빨리 나와 봐.”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다. 불이 났다니, 우리 집에서 불이 났다는 소린가. 다급한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허둥지둥 당황해하며 밖으로 나왔다.

“집에 좀 가봐. 난리 났어.” 

순간 우리 집이 아니고 아주머니댁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아주머니댁으로 내달렸다. 현관 앞 계단에 올라서니 안에서 화재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며, 현관 입구에서부터 연기가 꾸역꾸역 나오는 것이 더럭 겁이 났다. 안으로 들어서니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열 수 있는 창문과 문을 모조리 열었다. 가스레인지에서 고약한 냄새를 내며 냄비가 타고 있었으며 손잡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녹아내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주머니를 괜찮다는 말로 안심시키고 뭐하셨는지를 물었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었나 봐.”

아뿔싸!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지척에서 잠을 잤다니, 더구나 연기가 이렇게 심한 상태에서. 그저 말문이 막혔다. 내가 밭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언뜻 타는 냄새를 맡았었는데, 그 시간이 벌써 한 시간이 넘은 듯싶다. 

언제부터인지 주위 사람들이 수군대었다. 치매가 왔다고. 아주머니가 수시로 엉뚱한 소리를 하는 통에 마을 사람들과도 다툼이 잦았다. 이웃에 살면서 늘 마주하고 살아왔지만, 이렇게까지 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순간 코로나 때문에, 진행이 더 빨라진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앞선다.

사실 나도 불 위에 무얼 올려놓고 잊어버릴 때가 많다. 또, 손에 쥐고 있던 것도,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잊고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주머니가 목이 아프다고 말한다. 연기로 인해 유독가스를 많이 마셨을 터이다. 잠깐 안에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 나도 목이 따갑고 컬컬하다.

치매,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여러 해 동안 마음고생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래도 요양보험 제도가 좋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 요양 시설에 모시는 일이 쉬워졌지만, 그때만 해도 요양 시설에 모신다는 것은 불효를 저지르는 일 정도로 여기고 그곳에 모셔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족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터널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장사치를 뻔 했네.”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아주머니가 농담까지 하신다. 어른들의 쉼터였던 마을 회관 문이 닫힌 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공원마저도 ‘실내외 체육시설 사용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쳐지니,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집안에서 우울감과 무기력증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고 긴 시간과 싸움, 그 싸움에서 지는 것이 아마도 치매가 아닐는지. 농번기 때는 그래도 일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한가한 때인 만큼 그 답답증은 오죽할까! 젊은이들도 지쳐가고 있는데 노인들이야 없던 병도 생길 지경이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신축년이다. 부릅뜬 눈에, 분노에 찬 거칠어 보이는 소가 금방이라도 달력 밖으로 뛰쳐나와 들이받을 기세다. 화가 이중섭의 ‘흰 소’다. 어쩜 이 시대의 성난 군중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도 하다. 코로나 19와의 전쟁은 올해도 한동안 여전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소처럼 우직한 마음으로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밖에. 긴 겨울이 지나면 결코 봄은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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