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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반짝반짝 나의 예순이수안

붉은 닭의 해 첫날이다. 1957년 정유년생인 나는 60년 만에 다시 정유년을 맞는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리 없건만 나는 마치 새 삶이라도 시작하는 것처럼 이 아침이 새롭다.

지난 길을 돌아보니 몇 단계의 큰 변화가 있었다. 스무 살 전후까지의 나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하고 착한 아이였다. 어릴 때 나는 매사에 감정이입을 너무 잘해 부모·형제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것은 다반사요, 집에서 키우는 소, 닭, 길가의 풀이나 새파란 하늘가 구름을 보고서도 뜬금없이 행복을 느끼거나 불현 듯 눈시울을 적시고는 했다. 한편으로는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상처도 깊은 시절이었다.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은 스물다섯에 결혼하면서부터다. 남의 땅에 포도나무를 심은 우리는 양식이 떨어지는 극한 상황까지도 몇 번 경험할 만큼 가난했다. 농사는 뜻대로 되지 않고, 아기는 연년생으로 태어나 육아와 농사를 동시에 해야 하는 데다, 남편은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빛나는 젊음은 타인의 것이었고, 참깨들깨 볶는 신혼도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닭띠인 것이 싫었다. 먹이를 찾아 평생 땅바닥을 헤집어야 하는 닭, 그런 닭과 나의 운명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구러 이십여 년을 사는 동안 어찌어찌해서 임대한 땅을 우리 소유로 만들었다. 이제 내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가 되었으니 빚이나 슬슬 갚으면 되는 줄 알았지만, 내 삶은 예측하지 못했던 길로 접어든다. 불혹의 나이도 한참 지난 그가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산 것이 십수 년, 어째서 내 삶은 이리 고단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 나는 애꿎은 닭띠를 탓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이왕에 닭의 모습을 닮을 운명이라면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닮으면 될 게 아닌가.

백년손님이 와야만 잡던 씨암탉은 사위 대접만이 아니라 온 가족의 영양보충까지 시켜주던 귀한 존재였다. 시계가 없던 시절 새벽마다 어둠을 깨워 새 아침을 알리던 수탉의 울음소리는 또 어떤가. 이상했다. 마음을 바꿔 먹자 어둠 속에서 빛의 도래를 알리는 그 우렁찬 소리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12간지 동물 중에 유일하게 날개가 있으나 하늘을 날지 못하는 무용지물을 앞다리 대신 가진 닭, 내 운명이 그 모습을 닮았다 해도 달리고 달리다 보면 내 짐은 가벼워지고 나의 날개에 새 깃털이 돋아날지 누가 아는가.

그래, 달려보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땅만 파는 닭처럼 나도 죽어라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고 되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너 고통의 시간과 이별했다. 이제 내 곁에는 두 딸과 두 사위, 두 손녀가 함께하고 있다. 드디어 나의 날개에 하늘을 날 수 있는 특별한 깃털이 돋은 것이다.

나는 지난날의 내 젊음이 전혀 그립지 않다. 자식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지금이 좋다. 반짝반짝 나의 예순이 좋다.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편집장, 회장 역임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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