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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인디언의 기도문으로정동예
   
 

농장 옆 산에 올라 솔방울을 줍는다. 실내 습기 조절용인데 덤으로 인테리어 효과도 있다. 바람이 불자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추위 앞에서 인테리어나 습기 조절 따윈 금세 무색해지고 만다. 솔방울 소쿠리를 들고 걸음을 재촉한다. 한 소쿠리로 족하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어린 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겨울방학이 되면 나는 동네 친구들과 비닐 포대를 들고 뒷산에 올라가 땔감으로 쓰일 솔방울을 주웠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힘든 줄 모르고 했었다. 한 포대 두 포대 이고 지고 집에 오면 따끈한 고구마가 한 솥 삶아져 있어 동치미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그 겨울에는 재미난 놀이가 많았다. 고무줄놀이 깡통 차기, 논에서 스케이트 타기 등등. 얼마나 재미났던지 해 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날이 어둑해지면 엄마들이 아무개야 하며 친구들을 불러들였고, 나는 꽁꽁 언 몸으로 뛰어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아궁이 가득 벌건 불이 있기 때문이다. 아궁이 안의 따스한 열기에 손을 녹이던 모습이 아련하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일찍 떠나신 까닭에 통나무 장작이 귀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우리 집에는 늘 솔잎이나 농사에서 나온 콩대나 깻단뿐이었다. 그러니 솔방울은 우리 집에서는 장작 못지않게 소중한 땔감 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남녘이었으니 그 정도의 땔감으로도 겨울나기가 가능했던 것 같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이곳 강원도였더라면 아마도 땔감을 사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행복을 느껴 본 이라야 지금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시절 행복했을까. 멋모르고 지낸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니 그때 어머니가 겪었을 아픔이 오롯이 전해온다. 지아비 없이 자식들 키우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겪었을 애로사항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머니는 오 남매 잘 키우기 위해 모든 어려움 다 감내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행복을 떠 올리기 전에 긴 날숨을 쉴 만큼 묵직한 아픔을 느낀다.

내 삶에서 굳이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 하면 바로 지금이다. 지금은 부족한 것이 무에 있겠나. 단지 자식을 품은 어미인지라 그들이 꽃길만 걷길 바라는 어찌할 수 없는 모성만 있다. 내 어머니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 위해 신령님께 빌었듯, 나 또한 자식 위해 인디언의 기도문으로 두 손 모아 본다.

“바람은 언제나 그들의 등 뒤에서 불고 그들의 얼굴에는 항상 따뜻한 햇살만 가득하게 하소서”.

정동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강원도 회장 역임, 2013년 새농민상 수상, 고추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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