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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뜻밖의 손님김영희

[한국농어민신문]

봄날의 도래를 알리느라 목련 꽃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오른다. 아직 채 벙글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 꽃차를 만드느라 매일 아침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구들방을 데운다. 밤낮으로 보름 정도 뜨거운 방에 뒹굴어야 제대로 된 차 맛을 낼 수 있기에 정성을 다하는 중이다.

군불을 지피기 전에 아궁이에 재가 얼마나 찼는지 보려고 무릎을 땅에 대고 고개를 쭉 빼서 아궁이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순간 방고래 입구에서 번뜩이는 고양이 눈과 마주쳤다.

“헉, 니 뭐꼬!”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지만, 꽃샘추위가 여전히 기승이다. 더구나 어젯밤은 비바람에 눈까지 내리지 않았던가? 고양이가 온기 남은 아궁이를 찾는 것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양이가 먼저 놀라 도망갈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아궁이 안에서 꼼짝을 않는다. 불을 땐다고 어서 나오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부지깽이로 솥뚜껑을 탕탕 쳐도 소용이 없다. 급히 지인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니, 신문지에 불을 붙여 안으로 던져 보란다. 좀 심하다 싶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문지에 불을 붙여 입구에 던졌다. 그러나 고양이는 요지부동이다. 연기를 마시면 나오지 않겠나 싶었지만 허사였다.

‘아니 저놈이 왜 저러지, 어디가 아픈가?’

이런 경우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던 나로서는 난감하다. 일하러 간 남편에게 전화해보니 고양이가 자기 발로 나올 때까지 자리를 비켜주고 기다리란다. 방으로 들어와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나가서 들여다봐도 꿈적도 않고 누웠다. 저놈이 뭘 믿고 저러나 싶어 은근히 부아가 났다. 장대로 탕탕 때려볼까, 고무래나 당그래로 끌어내볼까 등등. 별별 궁리를 다해봤지만, 맘에 쏙 드는 방법이 없다. 고민 끝에 혹시나 하는 맘으로 시골 살이 경험이 있는 친정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옛날부터 고양이는 추우면 아궁이속으로 들어가 재에 뒹군다. 고양이도 자존심이 있는데 그냥 나오겠나. 고기나 생선을 입구에 갖다놓고 먹어라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지켜봐라.”

언니의 처방전대로 삼겹살 구운 것과 가자미 반 토막을 지나간 달력위에 올려 아궁이 입구에다 놓는다.

“고양아, 니 이것 묵고 너거집에 가라 알았제.”

다짐하듯 한마디 해두고 방으로 들어와 아궁이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지켜봤다. 인내심이 바닥이 날쯤에 시커먼 게 나온다.

느릿느릿 나오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차려 놓은 고기와 생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무단 침입한 주제에 저 도도한 걸음걸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문지방에 앞다리를 걸치고 늘어지게 기지개까지 켠다. 가관이다. 그러더니 아예 앉아서 명상을 즐길 폼을 잡는다. 마음 같아서는 신발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지만, 꾹 눌러 참고 하는 양을 지켜본다.

그러기를 얼마쯤 지나자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난다. 손대지 않은 고기와 생선은 담 귀퉁이에 내려놓고 한 번 더 주문처럼 말한다.

“이것 묵고 우리 아궁이에는 들어가지 마래이.”

솥에 물을 붓고 불을 지핀 후에 가보니 언제 왔다 갔는지 달력 위가 깨끗하다. 이것으로 예고도 없이 찾아온 뜻밖의 손님과 작은 실랑이는 끝이 났다.

이번일로 인해 직선적이고 성미 급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강한 것과 부드러움의 조화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는 인간관계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딱히 이해 못할 일도 없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며 산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난다. 뜻밖의 손님으로 인해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봄날이다.

/김영희 98년 국제신문 논픽션 우수상,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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