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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경자의 전성시대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2020년 경자년이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부터 SNS에서는 의인화된 경자년의 덕담 시리즈가 앞 다투어 날아들었다. 집 나갔던 경자년이 들어온다느니, 착한 경자년이 온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자(子) 돌림의 이름들이 흔하다. 그것은 일본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창씨개명으로 한국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 부른 것이 원인이 되어, 그러한 이름들이 많이 쓰였다는 것이다. 아픈 역사의 상흔이다.

길을 가다 “ㅇ자야! ㅇ자야!”하고 부르면 십중팔구가 뒤돌아본다고 할 정도다. 우리 마을의 부녀회원 명단과 주위에 친구들 이름만 보더라도 대부분이 영자, 경자, 숙자로 일관한다. 1940년~50년대식의 이름들이다. 올해는 애꿎은 경자들의 원성만이 높다.

“아니 왜 정초부터 가만히 있는 경자를 불러대며 다들 욕을 해대는지 모르겠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랴. 쥐띠 해. 쥐는 영특하다고 한다. 또, 부지런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특하고 부지런하기만 한 그 쥐를 사람들은 뱀 이상으로 혐오스럽게 여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만, 쥐는 죽어서 수많은 자료를 남긴다”고 그 누군가가 말했다. 그만큼 쥐가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리라. 사실 공헌도가 꽤 높다. 사람과 유전자가 많이 같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실험용 쥐들이 희생했으며 의학계에 이바지했는가. 이를 생각한다면, 혐오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크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고, 또 추모비를 세워도 모자랄 판이다.

그래서인지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도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윤리적인 차원에서 인간들에게서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며, 수년 동안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오고 있다.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 때문에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정당화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이다. 그렇다.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다. 이유 없는 생명은 없단다.

우리 부부는 시설채소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는 이상하게도 하우스 주변에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쥐구멍이 많이 생겨났다. 먹을 것을 찾아서 왔는지, 아니면 따뜻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서식처를 이곳으로 옮긴 것만은 확실하다. 위생상의 피해와 시설물의 파손으로 피해가 올까봐 여간 신경이 쓰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쥐가 쉽게 사람들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쥐란 놈은 영특한 동물임엔 틀림이 없다.

하우스 안에는 라오스인 직원들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여러 마리의 반려묘도 있다. 그러나 그 고양이들은 쥐를 잡을 줄도 공격할 줄도 모른다. 어쩌다가 그들의 눈에 띌라치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쳐다만 볼뿐 그저 속수무책이다. 사료로 길들어져 배가 부른 고양이들이 사냥본능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도 다 옛말일 뿐이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쥐 잡는 날이 있었다. 동네 한가운데에 있었던 정미소 담벼락엔 늘 포스터가 몇 장씩 붙어 있었다. ‘일시에 쥐를 잡자. 쥐약 놓는 날 ㅇ월 ㅇ일 ㅇ시.’ 거기엔 포동포동 살이 오른 커다란 쥐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가난한 시절, 온 나라가 식량난으로 허덕이는데, 애써 농사지은 귀한 곡식을 쥐가 축내고 있으니, 이를 막기 위하여 범국민적으로 쥐잡기운동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한 모양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온 동네가 일제히 쥐약을 놓느라 한 바탕씩 소동이 일었다. 더 놀라운 일은 쥐꼬리를 학교에 가져가야만 했다. 아마도 학교별 할당량 때문이었을 게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더구나 어린 학생들을 살생에 참여를 시키다니, 경악 그 자체다.

쥐뿐만이 아니다. 이때는 멍멍이까지도 약을 잘못 먹고 펄쩍펄쩍 뛰는 바람에, 모든 식구가 혼비백산이 되었다. 죽어가는 멍멍이를 바라보며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 속의 한 장면이다. 이렇듯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쥐라니. 쥐와 인간은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인가보다.

경자년, 본의 아니게 모욕을 받는 세상의 모든 경자 씨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자의 전성시대입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은 진정 이해가 아닐는지요. 설 명절도 지났다. 지금부터 영리한 흰쥐의 기운을 받아서, 이 모욕감을 좋은 기회로 삼는다면 올해도 틀림없이 승리하리라. 경자년이여! 부탁해요.

/이상분 계간 좋은수필 신인상, 좋은수필 작가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밥상일기’ 기고, 경기도 평택시 소사벌 서예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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