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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나눠먹기김영희

가을이다. 집 앞으로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단풍보다 더 울긋불긋하다. 농부에게는 들판의 곡식들을 거둬들이는 계절이 온 것이다.

일주일이 멀다고 예취기로 풀을 벤 밭두렁에 언제 나고 자랐는지 쑥부쟁이 환하게 웃고 있다. 풀과의 전쟁 속에서 용케 버티고 살아남은 꽃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남편과 아이들은 고구마를 좋아한다. 그래서 매년 고구마를 심지만, 고라니와 멧돼지 때문에 번번이 빈손이다. 올해는 밭 이웃에 스님이 와 계시고 개도 한 마리 있었다. 그 개를 믿고 이른 봄 고구마를 심었다. 올봄 긴 가뭄에 날마다 물을 주는 정성을 쏟았다. 진돗개 덕분에 고라니는 얼씬도 못했다. 우리는 밭에 갈 때마다 뇌물을 먹였다. 아니 밭 지키는 보수라는 말이 적당하겠다. 멸치나 과자, 그것도 없으면 계란을 삶아가거나 초코파이를 사가기도 했다. 개는 영리해서 밭 지킴이로 한 몫 톡톡히 했다. 해마다 우리 밭에서 배부르게 먹던 고라니와 멧돼지는 삶의 터전을 옮겼을까? 궁금했지만 속으로 그놈들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의기양양 좋아했다.

고구마 알이 굵어지기 전에 고구마 순을 땄다. 충분한 물 공급과 뜨거운 햇볕을 받아 고구마순은 윤이 반질반질 난다. 순이 너무 나가면 고구마가 잘다고 하신 어르신들 말씀을 떠올리면서 낫으로 고구마 순지르기도 했다. 종일 다듬은 고구마 순을 이웃에 인심도 쓰고 삶아 햇빛에 널기도 했다. 겉껍질을 벗기고 멸치와 볶아낸 고구마줄기는 저녁상을 빛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얼마가지 못했다. 스님이 소임을 맡아 외국으로 떠나시고 혼자 있던 진돗개를 이장님 집으로 보낸 것이다. 호시탐탐 노렸을 멧돼지가 밤사이 고구마 밭이며 옥수수까지 난장판을 만들었다. 멧돼지 부대가 떼거리로 와서 잔치를 했나보다. 호스로 물을 주면서 고구마만큼은 자기가 키우겠다고 호언장담한 남편도 기가 찬지 웃는다.

“그래도 그놈들 양심은 있제, 주인 맛보기를 기다렸다 묵는 것 봐라. 순이라도 한번 따 먹어서 좀 낫다 그자?”

남편의 그 말에 나도 웃고 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남은 농작물이라도 제대로 지켜야겠다고 그물을 두 겹 세 겹으로 쳤다. 그래도 고라니가 어디로 왔는지, 뛰어넘는지 밤사이 고춧잎을 한 고랑씩 먹어치운다. 감은 까치가 와서 구멍 내니 농사짓기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산으로 오르던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아침보다 배낭이 더 무거워 보인다. 열어보진 않았지만, 도토리나 산중 열매일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도 산짐승의 먹이를 그들의 허락도 없이 가져오는데, 그놈들이 밭에 들어와 채소나 곡식을 먹는다고 타박할일은 아닌 것 같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니 대문 앞에 고구마가 한 자루 놓여 있다. 우리 집에 고구마가 없는 줄 알고 이웃에서 두고 간 모양이다. 뺏기고 뺏는 게 아니고 나눠주면 부족한 게 채워진다는 세상사의 이치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김영희
98년 국제신문 논픽션 우수상,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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