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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엄마의 울타리송미령

[한국농어민신문]

빗소리에 잠이 깼다. 희붐한 아침. 곁에 자고  계시던 어머니가 보이질 않았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얼른 일어나 큰길까지 나가 봤지만 차들만 쌩쌩 지나갈 뿐, 행인들의 왕래는 없었다.

불안했다. “엄마아!”, “홍인순 모니카아!”를 번갈아 부르며, 문이 열려 있는 집들을 죄다 들어가 봤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태어나서 지금껏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랬던 어머니께서 2년 전에 치매 판정을 받으신 것이었다. 노상 다니던 시내에서 갑자기 길을 잃어버리셨던 것이다.

마침 그 즈음  허리 시술을 받고 통원 치료를 받으시던 중이었다. 동생들은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불안하니 병원에 모시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요양원보다 집에서 모시는 게 보다 적절할 것 같았던 것이다.  차라리 동생들의 말을 따랐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경찰에 신고할 요량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반대편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는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엄마, 홍인순 모니카 여사님!”하고 목청껏 외치면서 달려가 와락 껴안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로사야, 와이카노? 내는 괴안타. 내가 안 보여서 찾아 댕겼나?”하시는 어머니의 양손엔 한 움큼씩 묘목이 들려 있었다. “엄마 이게 뭐꼬?” 라는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환한 미소만 지으시며 “어여 가자. 집에 가서 자초지종 이야기 해 주꾸마”하며 나보다 앞질러 가신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몇 시간 동안 불안하고 긴장 되었던 마음이 풀어짐과 동시에 다리에 힘까지 풀리면서 등짝엔 땀과 빗물이 범벅되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로사야, 감기 들겠다. 니 먼저 씻거라. 내는 이거 심어 놓고 씻을란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께선 가져오신 묘목을 다 심어 놓으셨다. 밥상을 마주하신 당신께선 들뜬 표정으로 말문을 여신다.

“저 낮은 담부랑을 보면서 평소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들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이전 같잖아서 막상 어데 가서 구하노, 카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우연히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었는 기라. 살살 걸어가다 본께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산길을 걸어가게 되었는데 가다 보니 오래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능기라. 옳다구나, 하고 울타리 아래를 살펴봤더니 묘목들이 눈에 띄는 기라.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 그럴까 싶기도 하더라.”

엄마는 내가 탱자나무 묘목을 구하고 싶어 하는 걸 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셨을까? 쪽마루에 앉아 엄마랑 함께 햇살바라기 할 때면 엄마를 무료하지 않게 하려고 어느 여가수가 불렀던 ‘이사가던 날’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던 생각이 났다.

“이사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나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흐려가는 기억 속에서도 엄마는 딸이 부르던 노래 속의 탱자나무를 기억 하고 계셨구나 싶으니 가슴 한켠이 아렸다.

어머니는 계속했다.

“내가 죽은 뒤에도 탱자나무를 볼 때마다 옴마 생각이 날 기다. 하얀 꽃이 피면 예쁘기도 하지만 향이 좋제, 열매는 약으로 쓰이제, 알고 보면 버릴 것 하나 없는 착한 나무다. 참말로 희한한 일이제. 내가 거기까지 우째 가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있자니 영락없는 여섯 살 애기의 모습이다. 치매가 있음에도 딸이 잘살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그 마음, 탱자나무울타리가 성성해 갈수록 당신의 딸도 함께 야물어 가겠지.

이제는 당신의 아픈 손가락이 당신의 마음속에서도 아물었으면 한다. 탱자 꽃, 그 환한 꽃을 어머니와 함께 볼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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