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한국농어민신문]

일을 마치고 귀가한 남편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저녁도 대충 먹고는 침대에 기대 유튜브 시청에 열중이다.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서는 내 기척에도 반응이 없다. 대체 뭘 보나 싶어 가까이 가보니 귀여운 강아지 동영상이다. 어느새 입이 벌어지고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한다.

다음날 아침, 육수를 빼고 건져낸 멸치를 보더니, 비닐에 담아 달라고 했다. 평소 어디를 가든 아무리 맛난 게 있어도 가지고 오는 법이 없던 사람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달라고 했다. 다시 물으니 마지못해 강아지에게 줄 거란다.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사람들이 나눠 먹고 싶어서 포장해주는 음식도 마다하는 성격이다. 이것저것 남은 음식까지 담아 건네면서 개는 음식에 맛을 들이면 사료를 먹지 않는다고 아는 체를 했다.

“내 알아서 한다.”

짧게 대답하고 집을 나서는 남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그 이후로는 생선이나 기름진 반찬이 남으면 어김없이 싸달라고 했다. 하루는 두툼해진 비닐봉지를 건네며 도대체 어떤 개라서 먹는 걸 챙기는지 물었다가, 돌아오는 대답에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남편이 일하는 곳에 개가 두 마리 있다고 한다. 동료 J 씨가 근처에 가면 개들이 꼬리를 흔들고 뒹굴면서 재롱을 부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가면 그냥 멀뚱멀뚱 쳐다본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남편은 과자와 구운 계란을 가끔 사다 줬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는 그때 잠깐 따를 뿐이고, 여전히 J 씨만 좋아하더란다. 그래서 강아지와 J 씨의 행동을 유심히 봤더니, 평소 부지런한 품성의 동료가 음식 찌꺼기를 날마다 가져다주더라는 것이다. 품종이 뭐냐고 물으니 개가 미운지 “똥개”라고 짧게 대답했다. 개 한 마리 키우자는 남편의 제안을 몇 년째 단호하게 거절한 터라 그 개하고라도 잘 지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아끼다’라는 우리나라 진돗개와 비슷한 형태지만 덩치가 아주 크고 흰색이 눈부신 잘생긴 백구와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였다. 개 훈련이랄 것도 없는 교육은 남편 몫이었던 반면에, 개를 키우면서 생기는 귀찮은 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먹이를 챙겨주고 주변 청소를 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도 내 발소리만 들어도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 잘 챙겨주면서 정이 들었는데, 그만 누군가가 탐내어 한순간에 몰고 가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 개를 키우지 않았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이 넘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증하면서 동물 관련 직업이 유망직종으로 떠오른다는 말도 있다. 개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뜻이다. 반려견의 훈련사, 미용사, 상담사, 심지어 개 때문에 일어나는 이웃 간의 분쟁을 조정해 주는 동물변호사도 있다고 한다. 그냥 웃을 일이 아니다. 절에서 반려견의 천도재를 지내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변호사에 천도재까지라니, 참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개 팔자가 다 좋지만은 않다. 어쩌면 주인에 따라 빈부의 차가 사람보다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개도 농가 소득에 한몫했다. 어느 정도 키우면 개장수가 와서 사 갔다. 개장수가 왔을 때 팔지 않으면 다음 날 개가 집을 나간다고 할 정도로 팔고 사는 시점이 대략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개장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뿐이 아니다. 키우던 개가 원하지 않게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분양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 개집은 기본이고 몇 달 치 사료를 얹어서 보내야 하는 실정이다. 조금 아프기라도 하면 사람보다 더 비싼 병원비를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개를 키우는 일은 정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며칠 후,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편 얼굴이 환하다. 드디어 개가 멀리서부터 아는 체를 하더란다. 꼬리를 흔들고 뒹굴면서 다리를 하늘로 높이 들고 재주까지 부리더라고 했다. 저렇게 좋아하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  매일 싱글벙글할 사람이다. 그러나 그 뒷일은 또 내 몫이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까지 되는 반려견과의 이별은 언제 어떤 방법이 정답인지 몇 년째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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