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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이국에서 온 신부정동예

[한국농어민신문]

“사모님, 안녕하세요?”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억 저편에서 반가운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쯤 자신의 나라에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거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전처럼 밝은 목소리로 얼마 지나면 한국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그녀는 수년 전에 우리 농장에서 농사일을 도와주던 외국인 노동자다. 처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 너무 어려 보여서 일 시키기가 막연하기만 했던 것 같다. 얼핏 보아 갓 고등학교나 졸업했을 나이로 보였다.

내 생각과 달리 그녀는 뚝심 있게 일 처리를 잘했다. 고향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도운 경험 덕분에 농장 일을 별 어려움 없이 잘 해냈다. 특히 한국어가 가능해 우리와의 소통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우리나라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에게만 자격을 준다. 그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고 하니 그녀의 총명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님 일을 도우면서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을 것이다. 능통하지는 않아도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 실력에 우리는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대화가 많아지자 우리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딸처럼 살갑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나는 모정 비슷한 마음이 생겼다. 일할 때나 잠시 쉴 때 나는 그녀에게 우리의 아리랑을 불러주고는 했다. 그녀도 나에게 그들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향수에 젖어 노래 부를 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지 눈가에 물기가 고이고는 했다. 그녀의 눈물을 볼 때면 내 마음도 스산해지고는 했다.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 사건 킬링필드를 우리는 기억한다. 유년 시절, 그녀는 죽음의 땅에서 살아남은 부모님의 삶에서 역사의 아픔을 체감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를 겪은 아픔이 있어서인지 그녀의 표정을 통해서 나는 어렴풋이 캄보디아의 아픔을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의 노래를 부를 때 그녀는 언뜻언뜻 쓸쓸한 표정을 짓지만, 열심히 일할 때 그녀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역사적으로 수난을 겪어 강인한 정신력이 생겼을까 생각하니 우리의 민족과 닮은 듯해 동병상련의 아픔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다른 농장으로 보낼 때 눈물로 떠나보냈다. 겨울에 농사지을 수 없는 강원도의 추위가 야속하기만 했다. 이렇게 매년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면서 참 많이 상처를 받기도 하고 보람도 느낀다.

그 많은 인연 속에서도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처음이다. 반갑고 기특하기만 하다. 어찌 보면 결혼 못 한 노총각을 이국에서 온 신부가 구제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좋은 소식에 그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걱정이 많아진다. 결혼 생활이 늘 달콤한 것만은 아닌 데다 너무도 다른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염려스러운 것이다.

나도 결혼 초에는 남편과 더러 충돌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 아니지만 그때는 그것이 큰일처럼 느껴졌다. 같은 나라이지만 고향이 다른 데서 오는 문화의 차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나는 젓갈을 많이 넣어 김치를 담그는데 남편은 그 김치를 아주 싫어했다.

세월의 흐르면서 나도 차츰 젓갈 많이 넣은 김치를 싫어하게 되었다. 같은 국적의 남녀가 결혼해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는데, 그녀의 결혼생활에도 자잘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그녀는 서로 뜻 맞춰 가면서 행복을 잘 가꾸어 가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삶에서 많은 인연이 있지만, 가장 깊은 인연이 부부의 인연이 아닌가 싶다. 전혀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었으니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야만 오랜 인연을 지속할 수가 있다. 잠시 다른 마음이 되었다가도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부부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도저히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엉킨 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순조롭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억겁의 인연으로 만난 사이가 부부라 하니, 그녀에게도 기나긴 삶의 길 끝까지 소중한 사람이 옆에 있길 바랄 뿐이다. 알콩달콩 깨소금 냄새 솔솔 풍기는 결혼생활을 통해 타향살이의 아픔을 잘 이겨내길 바라본다. 

/정동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강원도 회장 역임, 2013년 새농민상 수상, 고추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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