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오늘도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길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구슬프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나는 이 적막함과 고요가 좋아 매일 산에 오른다. 높은 산세를 자랑하는 강원도 친구는 이곳 사람들이 산 같지도 않은 평지를 임야라 칭한다며 매우 같잖게 여긴다. 그래도 산은 산인 것을. 사실 우리 지역은 큰 산이 없고 그나마 있는 산이라곤 야산으로 평평해서 평택이라 불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새들의 재잘거림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상쾌하다. 산의 초입을 지나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문득 산길이 깨끗하게 다가왔다. 누군가가 청소한듯했다. 전에 없던 놀라운 광경이다. 몇 년을 거의 날마다 이 길을 걸었지만,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눈길을 쓸 듯이 누군가가 이 산길을 청소한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아침이다.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곳도 아닌 고즈넉한 소롯길에 불과한 길이건만, 선한 그분은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 길을 깨끗하게 하였을까! 문득 며칠 전에 만났던 그분이 떠올랐다. ‘아! 맞아 그분이야 그분일 거야’ 거의 확신에 찬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마늘을 캐다 말고 땀도 식힐 겸 더위를 피해 냉면을 먹기 위해서 시내로 나가는 중이었다. 옆 동네를 지나치는데 이상하리만치 도로가 말끔해졌다. 의아해하며 천천히 차를 몰고 가다 보니 저만치에서 남자분이 경계석에 엎드려 풀을 뽑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차를 멈추고 내다보니 호미와 청소도구까지 갖추었다. 

佛眼豚目(불안돈목) 이라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남편이 요즘 매우 신경 쓰는 일이 있다. 마을의 이장 일을 맡고부터 마을청소 때문에 여간 불편을 겪는 것이 아니다. 거의 고령인 데다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 젊은이들은 직장을 나가다 보니, 그리 쉽게 청소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다행히도 마을 안에 있는 공원과 도로변은 주기적으로 시에서 나와 청소를 해주기 때문에 한시름 놓았지만, 마을 안 길과 게이트볼장의 잡풀은 엄두를 못 내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처지다. 그래서 그분의 행동이 예사로 보이질 않은 것이다.

“시청에서 나오셨나요.” “아닙니다. 정년을 앞두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순간, 가슴이 뭉클 해왔다. 말씀도 다 잇지 못하는 그분의 따뜻한 성품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이보다 더 숭고한 일이 있을까. 남을 의식하지 않은 체 오로지 선한 마음으로 더위도 아랑곳없이, 궂은일을 자처하고 있으니 정말로 복 받을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산길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목격하다니 감동이 배로 밀려온다. 주위에 두어 개의 산소가 정갈하게 정리된 것을 보니, 아마도 벌초하면서 에어기로 밀고 나간듯싶다. 그 길도 꽤 긴 거리다.

다음 날,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다. 남편이다. 빗자루와 갈퀴를 들고 나도 합류해본다. 땀방울이 비 오듯 했다. 어느새 혼잣말하는 나를 본다.

“선한 사람 되려다 이장 마누라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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