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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女담] 쌀값에 대한 생각이수안

[한국농어민신문]

촌부 셋이서 늦가을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창 밖 수확이 끝난 들판에는 제주 바다의 부표 같은 볏짚 사일리지가 둥둥 떠 있었다. 해녀가 바다에서 해산물을 건져 올려 우리 식탁을 풍요롭게 한다면, 저 들녘에서 쌀을 건져 올리는 농부는 우리가 생명을 이어가게 해 주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몇 년 만에 오른 쌀값 이야기가 나왔다. 한 친구는 정부에서 북한에 쌀을 보내 창고가 텅텅 비어 쌀값이 올랐다고 했다. 쌀 5만톤을 보내려면 목포, 군산 등 네 개 항구에서 두 달 꼬박 하루도 안 쉬고 실어내야 한다는데, 그 엄청난 대이동을 어떻게 기자들 몰래 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으련만, 친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가짜 뉴스의 창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쌀값은 오랫동안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했지만 크게 보면 어언 30여년이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재작년 수확기 쌀 가격이 한 가마니에 12만9000원 정도였는데 이는 30년 전 가격이고, 작년에는 15만3000원이었는데 이는 20년 전 가격이다. 30년 전에는 쌀 천 석으로 강남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만 석은 줘야 살 수 있다.

세상 온갖 물가가 다 오른 걸 생각하면 쌀값은 내리기만 한 셈이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농민들이 논둑을 허물기 시작했다. 모내기하던 옥답에 오이 모종을 심고, 포도나무를 심었다. 튼튼한 축사를 지어 소·돼지를 기르는 축산인의 길로 가기도 했다. 나라에서는 다른 땅보다 저렴한 논을 대규모로 매입해 아파트단지를 조성했다. 논농사 지을 땅이 줄자 쌀 생산량이 줄었다. 게다가 올해 이상기후로 흉년까지 들자 마침내 쌀값이 회복한 것이다.

그저께는 오랜 세월 오이 농사를 지어 온 문우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평생의 노동으로 몸은 여기저기 아픈 데다, 아무리 일해도 생활이 어려우니 농사를 접어야겠다고 했다. 비정규직이라도 부부가 취직하면 지금보다야 살기가 좀 수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평생 쌓아온 경험과 농사 기술을 팽개치지 말라며 간곡하게 말렸다. 어언 30여 년 만에 오른 쌀값을 근거로 희망도 이야기했다. 오이 농사를 짓는 문우는 쌀값 오른 것이 자기에게 무슨 희망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농민이 요구하는 수준까지 쌀값이 오른다면 나는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농사꾼은 논에 심었던 과실수를 캐내고 비닐하우스도 철거할 것이다. 벼농사를 포기하고 다른 작목으로 전환했지만, 그 길도 생산량이 포화상태라 적정 가격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허물었던 논둑을 다시 만들고 물을 가두어 모내기를 하면 재배면적이 줄어든 타 작물도 적정 가격이 유지될 터. 농촌의 미래가 이러하다면 친구는 다시 오이농사에 희망을 걸어도 좋지 않을까.

소비자는 오랫동안 쌀값 걱정 없이 살았다. 맑은 공기가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처럼 쌀도 아주 싸게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 회복 단계인 쌀값에 대한 기사를 보면 폭등을 우려하는 기사가 많다. 쌀을 재료로 쓰는 식품업계가 제품 가 인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든지, 서민들이 더 어렵게 되었다며 농민과 서민을 대결 구도로 만들어 간다. 꼬리말에는 쌀값이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 생각보다 많다.

지금까지의 쌀값 변동에 대한 정보 없이 단순히 작년 대비 인상폭을 다룬 기사를 보고 소비자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성과 판단력을 갖춘 기자의 농촌과 쌀값에 대한 시각이 인정머리 없기가 일제강점기 왜놈 순사 못지않다.

쌀값이 올랐다지만, 밥 한 공기 해 먹을 수 있는 쌀의 가격은 생수 한 컵 값인 220원 정도다. 요즈음은 옛날처럼 고봉밥을 먹는 사람이 없다. 삼시 세끼 집밥을 먹는 사람도 드물다. 쌀 소비량이 적어 지금의 쌀값이 가계에 큰 부담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소비자들도 쌀값에 대해 표피적인 해석으로 쓴 기사에 동의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회복되어가는 쌀값에 지금까지 낮은 가격으로 쌀을 사 먹은 소비자들이 저항하는 것을 보면 농민은 맥이 다 빠지고 만다. 작은 행복을 위해 우리는 밥 스무 공기 이상 해 먹을 수 있는 쌀의 가격으로 한 잔의 커피를 기꺼이 즐기지 않던가. 농민도 작은 행복을 망설임 없이 누리고 싶은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외치고 싶다.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전 편집장, 회장 역임, 문예운동 신인상,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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