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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자연식 동치미 맛김기숙
   

[한국농어민신문]

겨울이 오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동치미는 올해도 어김없이 응달진 광에서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릇 가게에 가면 잘생긴 그릇이 눈길을 끈다. 그래도 난 옛것이 좋아 옛것만 고집하는 고집불통 주부다. 김치를 담는 그릇 중에 옛날 항아리만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시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거칠거칠한 김칫독 몇 개를 여태껏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배추김치보다 동치미가 더 인기다. 두셋만 모여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동치미에 대한 평가가 지대하다. 동치미를 잘 담그는 인정이 할머니는 내년에도 몇 집 담가주기로 했다고 은근슬쩍 자랑이 늘어진다. 항아리 속에는 쪽파, 생강, 삭힘 고추, 무, 소금을 약간 넣은 싱거운 물이 만나 가족을 이룬 듯 옹기종기 모여 잘도 지낸다. 동치미가 익으면 냉면을 삶아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는 것도 겨울철 별미다.

어릴 적 고향에서도 겨울 동치미는 인기였다. 초가지붕에 왕골자리를 깐 방바닥이 식어 갈 즈음 되면 밤은 깊어지고 입은 출출해졌다. 친구들과 라디오를 켜놓고 노래가 나오면 되돌리기 하며 적기도 하고 음절을 따라 부르기도 하던 소꿉친구. 몇 수십 년이 흘러도 동창들 여섯 명과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산다. 그 친구들은 다들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두더지처럼 평생 땅만 파는 나를 부러워한다. 자급자족해서 내 맘대로 해 먹는 음식이 부럽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냉장고가 아니면 자연식인 항아리에 담가 먹는 동치미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다고 말을 한다. 나는 항아리 김치를 담가 자연으로 익혀 먹으니 맛도 옛날 맛 그대로다. 눈 내리는 밤, 오도 가도 못 하고 어른들 주무시면 동치미 꺼내어 숟가락 달그락거리면서 먹던 동치미 맛을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조용히 먹으려고 하면 웃음이 더 나오고 양푼에 맞닥뜨리는 숟가락 소리는 좁은 방을 넘어 결국 친구 아버지가 깨어 떠들지 말라고 하셨지만 웃음은 더 그칠 줄 몰랐었지.

한 달여의 항아리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녹초가 된 파와 고추와 어우러진 무의 뽀얀 변신이 경이롭기만 하다. 가을무로 담아 겨울에만 참맛을 느끼는 동치미는 담기도 수월하고 비싸지도 않아 누구에게나 부담이 안가는 시원한 음식으로 거듭나는 동치미.

더러 이웃과 친구들과 모여 격식 차리지 않고 찐 고구마와 큰 양푼에 동치미 쭉쭉 쪼개어 놓고 한쪽씩 먹는다. 양푼에다 먹는 것은 멋도 아니요 그릇이 없어서가 아니다. 국물과 함께 많이 담아야 여럿이 먹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사람 앞에 한 그릇씩 줄 수도 없는 것이지 않는가?다닥다닥 붙어살던 집들은 폐허로 변하고 옛 어른들은 많이 돌아가셨으니 이웃이라고 해도 이젠 몇 분 안 되는 게 요즘 시골실정이다. 남은 어른들은 회관에서 앉아서 하는 건강체조라도 하신다고 유모차에 의지하여 일렬로 가신다. 사랑방이 없어지고 이웃으로 가던 마실도 없어졌다.

바로 어제, 우리 집에 어른들 몇 명이 놀러 오셨다. 동치미를 맛보러 오셨다고 하신다. 나는 좋아라고 동치미를 일부러 큼직하게 썰어 양푼에다 사람 숫자대로 숟가락만 얹어서 드렸다. 밥을 한다고 하니까 동치미만 먹으면 된다고 한사코 말리신다. 냉장고를 뒤져보니까 무시루떡 서너 쪽이 보인다. 동치미와 떡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동치미 평가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동치미 간을 잘했느냐? 동치미로 원 없이 배를 채웠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해가 기울 무렵 저녁이 늦어진다고 발길을 재촉하시는 등 뒤로 석양이 동무한다. 어르신들의 연세가 서산에 지는 석양 같아 맘이 짠하다.

“건강하게 지내시다 내년에도 동치미 맛보러 꼭 오셔요.”

/김기숙 수필과 비평 신인상, 서주문학회 회원,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충남 회장, 충남도 건전생활체험수기 최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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