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옥 문학미디어 등단,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음성문인협회 회원

[한국농어민신문]

나뭇가지마다 샛노란 꽃이 피어있다. 실은 꽃이 아니라 병충해로부터 복숭아를 보호하기 위해 쌌던 봉지가 매달린 풍경이다. 며칠 전부터 남편은 가지 자르는 작업을 시작했다. 너무 복잡하지도 않게, 너무 드물지도 않게 간격과 위치를 봐 가며 가지치기를 해야 원하는 수확량도 확보하고 햇빛과 바람도 잘 드나든다. 남편이 가위질을 하고 지나간 자리에는 나뭇잎과 봉지가 바닥에 켜켜이 쌓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꽃들이 춤을 춘다.

나는 뒤따라가며 여기저기 흩어진 전지목과 봉지를 줍는다. 전지목은 모아서 파쇄하면 땅심을 돋워주는 좋은 유기물이 된다. 노란색 봉지는 빠짐없이 주워 태운다. 봉지 안에 서식하고 있을 병균을 태워 과수원 내의 병균의 밀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작년 이맘때도 이렇게 정성껏 일했지만 올해 농사 결과는 참혹했다. 올여름 복숭아 수확 때의 여러 가지 일이 스쳐 간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힘이 쭉 빠진다.

어느 날 하루 일을 마칠 무렵이었다. 휴대폰 벨이 요란스럽게 울려 받고 보니 복숭아가 왜 이러냐는 볼멘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카톡에 사진을 보내놓았으니 복숭아 상태를 확인하라는 거다. 아마도 일꾼이 포장을 잘 못했나보다고 변명했지만, 고객의 불만은 쉽사리 누그러지지 않았다. 꼭지 부분이 새까맣게 썩어 구멍이 났다는 이야기다. 열매에 까만 점이 있어서 복숭아를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다. 무어라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막막했다. 긴 장맛비로 인해 복숭아 꼭지가 물러서 그렇다고 설명을 해주었지만 농사를 안 지어본 고객은 내 변명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떤 설명을 해도 택배로 받아먹는 입장에서는 이해 못 할 분위기였다. 하지만 농부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좋은 것으로 보내겠다는 마음뿐이다. 미안하고,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복숭아 농사를 안 지었더라면 이런 소리도 안 들을 텐데’하고 농사에 대한 회의가 일기도 했다.

복숭아 농사지은 지 십여 년이 조금 넘었다. 올해는 더 잘해서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야지 다짐했었다. 작년보다 나무 수도 늘어 더 많은 양을 딸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매사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세상 이치거늘, 더군다나 농사일은 더 그렇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농사다. 햇볕이 있어야 과일이 단맛을 내는데 올해는 긴긴 장마 때문에 복숭아가 단맛도 잃었다.

올해 첫 수확을 할 때였다. 복숭아는 운반차 가득 땄건만 고르고 고르다 보면 알이 깨끗한 것은 몇 상자가 안 되었다. 분명 딸 때는 멀쩡했는데 봉지를 벗겨보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검은 점이 박힌 데다 꼭지 부분은 무르고 아예 꼭지가 떨어진 것도 많았다. 농사는 잘되면 농산물 값이 폭락해서 걱정, 안되면 팔 게 없어서 걱정,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농부에게는 올해 유난히 농사짓기 힘든 해였다. 이른 봄, 복숭아꽃도 피기 전부터 냉해 피해를 입어 몽우리가 몸살을 알아 쪼그라들었다. 얼핏 보면 멀쩡해 보이는 나무도 군데군데 꽃 몽우리가 크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그래도 꽃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봄날의 사나웠던 날씨를 이겨내고 핀 꽃들이 지고 그 자리에는 밤톨만 한 열매가 조롱조롱 열렸다. 그 힘든 계절을 이겨내고 열매를 맺은 나무들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 뿌듯한 마음으로 열매솎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문제를 일으켰다.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기네 나라로 가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일손을 못 구해 동분서주하며 늦게까지 속을 태우며 겨우 마무리를 했다.

이른 봄의 냉해를 이겨낸 나무가 열매를 키우고 우리 부부는 흐뭇한 심정으로 그 어여쁜 것들 잘 못 될까 염려하며 밭에서 살다시피 할 때였다. 이번에는 물 폭탄을 맞았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렸다. 두 달여간 장맛비가 내렸으니 무엇인들 괜찮겠나. 복숭아나무가 아무리 물을 좋아한다지만, 뿌리가 물에 젖어 있었으니 무슨 힘으로 버텨 낼 수가 있단 말인가. 전국을 강타한 호우주의보는 여기저기서 둑이 무너지고 나무는 송두리째 뽑히는 일이 허다했다. 농부들이 힘든 한해였다.

이제 바닥에 놓인 나뭇가지는 거의 다 주웠다. 둑에 가지런히 쌓아 묶어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해 농사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농부는 농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내년에는 소비자들이 복숭아 너무 맛있다는 전화를 아주 많이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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