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성 여성현장
[농촌여담] 내년이 빨리 왔으면금경애

요즘 농촌은 산짐승과 대치중이다. 아니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침에 나가보면 콩잎은 고라니 밥으로 다 뜯겨나가서 줄기만 앙상하다. 들깨를 심으려니 늦었고 팥을 심으려도 그 녀석들 밥이나 될 것이 뻔하다. 덥고 힘들다는 핑계로 그 밭농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과수원이다. 온 밭이 누더기가 되어간다. 작은 나무는 아예 꾹꾹 눌러 밟아놓고 아직 설익은 사과는 맛이 없는지 질겅질겅 씹어놓는다. 먹자고 따면 속은 쓰려도 배고파 그랬거니 생각하겠는데 이건 먹지도 않고 몇 년 길러놓은 나무를 부러뜨려 놓으면 속이 시끄럽다. 이러다 보니 시골에서도 몇 분이 유해조수를 잡는다. 연락하면 근일 내로 잡기는 하겠지만 발자국을 보니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 단체로 다니는 듯해서 잡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올해 처음 수확하는 여름 사과를 서둘러 땄다. 이름이 썸어킹이란 사과인데 맛도 식감도 뛰어나다고 해서 기술센터 추천으로 심었다. 올해는 한두 알씩 달았는데 우박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맛이 궁금해 둔 걸 딴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다 팔기에는 상품 가치가 없으니 딸과 시누들에게 한 박스씩 보냈다. 애들 있는 집이 우선이다. 보내 놓고는 맛있다는 소감을 기다린다. 그래야 잘못 심었다는 고민 없이 안심해도 될듯해서다.

서둘러 딴 것도 산돼지 때문이다. 가지를 찢고 부러뜨리고 마구 짓이겨 놓으니 사과를 수확해버리면 혹여 덜할까 싶어서였다. 사과가 익을 때는 달콤한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나무뿐만 아니라 온 밭을 뒤집어놓는다. 울퉁불퉁한 땅에 풀이 나면 바닥 높이가 가늠이 안 된다. 그래서 잘못 디뎌 발목을 삐거나 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산돼지들이 큰 나무 밑에 웅덩이를 파서 목욕탕까지 만들어 놓았다. 사과나무만 바라보며 일하다 웅덩이에 발을 헛디딘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을 정도의 웅덩이다. 우리 과수원을 찜해놓고 매일 오겠다는 뜻일까. 갈수록 더해지는 횡포에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산돼지로도 부족한지 꿩들이 땅콩 밭을 파헤친다고 시부모님은 그물망을 치느라 땀을 한바가지는 흘리신다.

농사를 짓다보면 소소한 어려움은 늘 있지만 올 농사는 특히 애로사항이 많다. 우박이 한바탕 농작물을 두들기고 지나간 뒤 연이은 폭염으로 곡식들이 시들어가더니, 이젠 몇 날을 쉬지도 않고 내린 비 때문에 썩어간다. 겨우 아물어가던 사과도 탄저병이 와서 절반 넘게 따서 버려야 하고 고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런 판국에 방송에서는 연일 농산물 가격이 올랐다고 야단이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농산물 값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보도를 보며 니들이 한번 심고 가꿔 봐라. 그런 후에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막 대들고 싶다.

나는 올해가 빨리 지나가고 내년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전정하고 적과해서 아주 예쁘고 상처 없는 맛난 사과를 따고 싶다. 왜냐면 나는 농사꾼이니까.
 

   
 

금경애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모듬북 공연단 ‘락엔무’ 회원
사과과수원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농어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