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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가을 도둑김단이

[한국농어민신문]

가을이 요란하게 옵니다. 가을장마에 태풍 ‘링링’에 ‘미탁’에···. 농촌, 어촌에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저희도 비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국화는 피기 시작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고생을 했는지 국화 더미가 화사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막 피어나는 국화꽃을 보고 있으려니 몇 해 전 생각이 떠오릅니다.

가을 도둑! 나는 가을 도둑입니다. 아마도 나에게는 도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넓은 마당에 꽃밭을 가꾸며 살 때 소국이 흐드러지면 한두 줄기 꺾어 와 식탁이랑 책상에 꽂아두면 참 행복했습니다. 국화 향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니 더욱더 좋았습니다. 국화 한줄기에 꽃송이 두서너 개 딸려옵니다. 실내에서도 공간의 미를 느끼며 국화 향과 꽃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내로 나오고 나서 가을에 국화꽃이 피면 손이 먼저 다가가 국화꽃 한줄기 꺾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변명합니다. ‘가을을 훔쳐 왔다’라고요. 딱 한줄기 국화로 일주일이 행복했습니다.

꽃 도둑도, 가을 도둑도, 가을을 훔치는 것도 타이밍이 중요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국화꽃을 만나야 합니다.

어스름이 내리던 초가을 도로변 큰 화분에 국화를 심어놓았습니다. 가을이면 으레 등장하는 국화꽃 화분입니다. 주인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시민 모두의 꽃이기도 합니다. 타이밍이 딱 맞았습니다. 정말 손바닥만 한 국화꽃 줄기를 더듬더듬하며 하나 꺾었는데 꽃송이가 탐스럽게 딸려왔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진정시키며 집에 와 꽂았습니다. 노란 국화꽃이 참 예뻐 식탁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주말에 집에 온 딸아이가 말합니다.

“웬 꽃?”

“엄마가 가을을 훔쳐 왔지.”

“이건 가을 도둑이야!”

가슴에 돌멩이 하나 던져져 통증 없는 회오리바람이 일었습니다. 스스로 위안을 삼은 ‘가을을 훔치다’로 내 도벽을 미화시켰는데 들켜버린 것 같아 민망했습니다. 나는 왜 유독 꽃에만 도벽이 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국화 화분 하나 사 줄까?”

“아니.”

나도 제일 작은 화분 두 개 사다 놓았었습니다. 자줏빛이 도는 보라색은 싱크대 위 창문 앞에 놓고 노란 국화 화분은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그런데 훔쳐 온 국화의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애잔하면서도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 고고한 자태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비밀스러움이 없어서일까요?

다시 그 길 위에서 만난 국화꽃 화분의 꽃들이 나를 보며 “가을 도둑, 가을 도둑!”하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뿌리째 국화꽃을 떠갔고, 꺾어서 버리고 간 국화 줄기도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꺾여 시들해진 국화 줄기를 걷어 집에 와 병에 꽂았습니다. 물을 먹고 생기를 되찾은 보랏빛 국화도 예뻤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산에서 피는 꽃이라도 뒤에 올 사람을 위해 보고만 오는 거지 꺾지는 말아라”라고 하셨는데 나는 가을 도둑이 되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가을 도둑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 딸아이는 가끔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다시 도로변에는 예쁜 국화가 가을이 익어가는 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내 가슴은 발랑발랑, 벌렁벌렁합니다. 꽃이 예뻐서, 향기가 좋아서, 추억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손은 떨리지 않습니다. 도벽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반려묘 옹이와 별이가 도벽을 없애주었습니다. 어느 날 별이가 시크리멘 꽃을 먹는 걸 보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고양이가 먹어서는 안 되는 식물이 엄청 많았습니다. 국화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고양이가 국화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도벽이 사라졌습니다. 어쩌겠어요. 옹이와 별이에게 독이라는데······. 반려 식물 화분들도 하나씩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이제는 가을을 훔칠 일도 가을 도둑이 될 일도 없으니 탐스러운 국화꽃 화분을 보면 쿵쾅거리는 떨림보다는 아름다운 국화로 다가옵니다. 모두의 국화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제는 가을 도둑은 아니지만 비밀스러운 과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슴 한쪽에는 가을 도둑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만 아는, 딸아이도 아는 가을 도둑!

/김단이 평택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민들레 꽃씨> 당선, 월간순수문학 동화 <볍씨의 꿈> 신인상, 월간 아동문예 동화 <명석돌과 우산솔>로 아동문예문학상,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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