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분

[한국농어민신문] 

로히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다. 금의환향. 얼마나 누리고 싶었을 일상이었을까! 바라보는 우리도 콧등이 시큰하다. 그가 라오스로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로히는 우리 농장에서 10년을 함께한 아주 성실한 외국인 근로자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귀국을 앞두고 건장한 청년까지 들여놓고 갔건만, 그의 빈자리가 점점 더 커 감은 어인 일인가! 지독한 사랑을 했나 싶다.

지난해부터였던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의사를 수시로 내비쳤다. 상급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딸아이가 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걱정인 데다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오매불망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가려고 마음을 먹다가도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아온 남자친구와의 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더니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 부부나 진배없었으니 쉽게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었을 게다. 그러나 사랑보다 더 진한 혈육의 정을 그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천륜인 것을. 우리나라에 와서 오랫동안 고생한 덕에 고향에다 집도 새로 지었고 땅도 장만하여 출국하기 전보다는 풍족한 살림을 이룬 듯싶었다. 마흔도 안 된 나이지만, 어느 정도 부를 창출해 낸 것이다. 참으로 기특한 친구다.

며칠을 꽤 바쁘게 돌아다녔다. 아이들에게 줄 옷이랑 신발, 가방, 라면, 김, 등을 사고 금은 방에 들러 고가의 패물까지 사들이며 나도 덩달아 동분서주했다. 늘어나는 선물 꾸러미를 바라보니 불현듯 내 어릴 적에 보았던 작은 할머니 댁의 풍경이 떠 올랐다.

어느 날 독일에 있는 딸이 선물을 보내왔다며 우리에게 구경 오라는 전갈이 왔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나는 작은 할머니 댁의 방안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커피, 여자 속옷, 수건, 과자 초콜릿 등등 처음 보는 이상한 물건들이 방 안 가득 펼쳐져 있었고 작은할머니는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목소리가 한껏 높아 있었다. 

나는 당고모가 독일에서 간호사로 있다는 것과 많은 돈을 벌어서 종종 집으로 보내온다는 것도 그때야 알았다. 그러나 왜 머나먼 외국까지 가서 일하는가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로히 마음이 아마도 그때 당고모의 마음이었지 싶다. 부족한 가족에게 세상에 좋은 걸 선물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었으리라. 가족을 위해서 또,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났을 그들 때문에, 우리가 이런 부를 누리듯이 그의 나라도 그네들로 인해 곧 풍족한 날이 오리라 믿는다.

눈치가 빠르고 또, 손이 빠른 그가 있어서 그동안 내 삶이 참 수월했었다. 마늘과 감자를 심고 캘 때도 김장할 때도 항상 함께여서 든든했고 정말 힘이 났었다. 그 세월이 참 고맙다. 시집보내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처럼 공연히 심란했다. 그러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 삶이라 했던가! 애써 그 마음을 감추고는 남편에게 선물로 받았지만 거추장스러움에 빼놓기만 했던 18K 목걸이와 귀걸이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정표다.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영상 속 그가 예전처럼 여전히 입맛 다시며 식탐을 보인다.

“사모님! 김치랑 순댓국이랑 매운 곱창전골 많이 많이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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