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한국농어민신문] 

사나흘 뒤 따기 시작할 황도밭을 돌아본다. 껍질에 생기던 그을음병이 어지간한 상태에서 멈춘 것 같다. 열심히 방제한 유황소독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일주일 전쯤과 비교하면 알 크기도 마치 뻥튀기를 한 것처럼 굵어졌다. 수확 직전에 급속도로 커지는 특성을 생각하면 아기 엉덩이를 닮은 탐스러운 크기의 황도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숭아나무 나이 아홉 살, 이 품종에서 이만큼 인물 훤한 복숭아를 수확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철저한 준비 없이 친환경 농사에 뛰어들어 번번이 작황을 망친 것이다. 어느 해는 잿빛곰팡이병에, 어느 해는 심식나방이에, 또 어느 해는 긴 장마에 당한 것이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벌레들이다. 벌레 중에서도 심식나방과 순나방의 공격은 잔인할 정도였다. 특히 추석 무렵에 따는 만생종이 큰 피해를 보았다. 온갖 어려운 고비 다 이겨내고 살아남은 내 복숭아. 그러나 수확기 때가 되면 그 이쁜 옆구리를 공격해 구멍을 내거나, 꼭지 쪽을 파먹어 못 쓰게 만들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교미교란재를 매달아 밀도를 낮추고, 친환경 약제 추출물을 촘촘한 간격으로 뿌리는 노력에도 만생종의 피해를 줄일 수 없었다. 화학농약의 강력함에 내성이 생겼던 걸까. 친환경 자재의 공격쯤은 가소롭다며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더욱더 강한 공격을 해야 할 텐데, 내가 찾는 강력한 무기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러나 화학농약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는 한 저것들을 제압할 비책은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 이맘때쯤,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환경적으로 벌레를 잡는 데는 막걸리가 최고라는 것이다. 그동안 내 골머리를 앓게 한 천적들이 향기롭고 달콤한 막걸리를 좋아한다니,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막걸리 독에서 삶의 마지막을 장식할 기회를 주는 수밖에.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와 설탕과 주정을 준비했다. 정확한 비율로 섞어 창문을 낸 페트병에 담아 나무마다 매달고 열흘에 한 번씩 갈아 주었다. 그랬더니 세상에나. 그렇게도 오랫동안 내 복숭아를 못 쓰게 만들던 벌레들이 막걸리병으로 모여들었다. 달콤한 막걸리 독에 빠져 기쁘게 삶을 마감한 천적들의 주검 앞에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내가 그동안 살포한 자재는 은행, 고삼, 님, 데리스 등의 추출물과 때로는 친환경 자재 중에는 가장 강력하다는 제충국 추출물도 정기적으로 써 보았다. 생각해보면 그 모든 강력한 공격은 벌레가 피해 도망가는 자재였다. 반대로 막걸리는 그 달콤한 향기로 벌레들을 불러 모아 몽땅 해결해주니, 강경책보다 유화책의 힘이 더 강력한 것이 입증된 셈이다.

올 농사에 사용한 막걸리는 대략 60말 정도다. 덕분에 만생종도 9월까지 오는 긴 여정이었지만 벌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토실토실 살쪄가는 복숭아를 보는데 스윽 미소가 지어진다.

‘얼마든지 와라, 먹걸리는 무한 리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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