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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女담] 복숭아밭에서의 협상이수안
   

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바로바로 복숭아밭으로 들고 가 땅을 파고 묻는다. 유기물이 들어가니 땅도 부드러워져 좋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문제가 생겼다.

쓰레기를 묻기 위해 땅을 파려고 보면 먼저 묻은 쓰레기가 파헤쳐져 있는 것이다. 보나 마나 그 녀석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르스름하고 오동통하게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복숭아밭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아온 터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던 것이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갔다. 녀석이 파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는 흙과 마구 섞여서 다시 묻어도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거기에다 파리까지 생겨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과수원 작업장에는 간이 부엌이 있는데, 밤새 고양이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위에까지 발자국을 남겼다. 가끔은 냄비를 엎어놓기도 했다. 그 치다꺼리에 시간을 뺏기는 아침이면 나는 씩씩대며 중얼거리고는 했다.

“고얀 녀석, 걸리기만 해 봐라. 혼쭐을 내줄 테다.” 그러나 녀석은 잘도 피해 다녀서 나는 보이지 않는 녀석과 신경전을 벌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보름쯤 전의 일이다. 밭에서 복숭아 순을 잘라주던 작은 아이가 내 옆구리를 찌르더니 과수원 옆 손바닥만 한 묵정밭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노르스름한 털의 귀여운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의 시선을 따라가던 내 입에서 아! 하고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나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내가 그토록 벼르던 그 고양이가 제 새끼와 비슷한 크기의 커다란 쥐 한 마리를 떡하니 입에 물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어미 고양이는 전과 달리 비쩍 마르고 털도 윤기를 잃은 모습이다. 새끼를 낳아 키우느라 그 오동통하던 살이 다 빠진 게다. 그렇게도 흙을 파고 냄비를 엎은 것은 다 새끼 때문이었나 보다. 큼지막한 먹이를 입에 물고도 우리 모녀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서로 바라보기만 하는 어미와 새끼 고양이. 우리는 가만가만 그 자리를 떴다.

다음 날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식물성과 동물성 두 가지로 분류했다. 식물성은 전처럼 땅에 묻고, 동물성은 밥을 조금씩 섞어 새끼고양이가 나왔던 묵정밭 입구에 갖다 놓으며 협상을 제안했다.

“앞으로는 흙이 안 묻은 먹이를 새끼에게 먹이렴. 대신 땅은 파지 않는 거다.” 고양이는 내 마음을 읽은 듯 그 이후로는 땅을 파지 않았다. 대신 저들 보금자리 입구에 쏟아 준 먹이는 깨끗하게 먹어 파리도 덜 생기게 되었다. 작업장 간이 부엌 싱크대에 발자국을 남기고 냄비를 엎어놓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도 나는 전처럼 녀석과 신경전을 벌이지 않는다. 가난 속에서 자식을 둘이나 기른 경험이 있는 내가 아닌가. 모든 것이 궁핍한 도둑고양이 처지에 새끼를 길러야 하는 어미의 어려움이 오죽할지 나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저께는 과수원 아래쪽에서 올라오는데 작업장 주위에 새끼 고양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멈춰 서서 잘 세어 보니 새끼고양이는 네 마리나 되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들을 이끌고 생존 훈련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아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 많은 새끼를 혼자 키우느라 얼마나 동분서주할까. 거처가 허술해 지난 폭우 때 비가 들이치지는 않았는지. 걱정 많을 어미 고양이의 입장이 짠해 코끝이 맵싸해졌다. 

어제저녁에는 치킨을 먹었더니 뼈다귀가 제법 나왔다. 그래도 고양이네 대가족이 먹기에는 부족한 양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좀처럼 줄지 않는 멸치볶음이 눈에 들어온다. 뼈다귀 봉지에 멸치볶음을 쏟고 찬밥도 추가해 흔들어 섞은 다음 묵정밭 쪽으로 향한다. ‘이 정도면 새끼들뿐만 아니라 어미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겠지.’ 이제 가을 초입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좋은 계절에 새끼들이 무럭무럭 잘 자랐으면 좋겠다. 체력을 잘 길러 겨울 혹한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도록.

/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전 편집장, 회장 역임, 문예운동 신인상,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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