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경

[한국농어민신문] 

주말마다 내려오던 7살 손자가 3주 만에 찾았다. 목청을 높이며 이산가족 상봉하듯 얼싸안았다. 떡 벌어진 어깨, 내 목까지 올라온 키, 그새 많이 자랐다. 잠시 후 제 고모 귀를 잡아끌더니 뭔가 속삭인다. 이어 손을 맞잡고는 밖으로 나가려다 두리번거린다. 구두가 보이지 않는단다. 깜장 고무신을 찾는 것이다. 지난해 화가인 고향 친구가 검정 고무신을 선물로 줬다. 코고무신이 아닌 앞이 뭉툭한 검정 고무신이다. 일을 마친 후, 수돗물을 틀어 놓고 발로 문지른 다음 코를 세워 털면 물이 잘 빠져 좋다.

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나간 손자가 두어 시간 만에 들어오는데 얼굴이 벌겋다.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노는 도중 참참이 이런 구두 본 적이 있느냐며 자랑을 했단다. 수많은 고급 신발이 쏟아지는 세상에 손자는 꽃고무신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신발로 보였던 것 같다. 손자가 귀히 여기는 고무신만큼 그 옛날 우리 또래에게도 고무신은 더없이 소중했다.

1970년도에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집집이 넉넉하지 못했다.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고학년에 접어들기까지 검정 고무신은 지금의 메이커 운동화만큼이나 귀했다. 덩치가 큰 언니는 새 고무신에 새 옷을 사주지만, 키가 작은 나는 언제나 언니 신발을 물려받았다. 거기에 남동생의 발까지 내 발 크기를 넘어서고 보니 헌 고무신은 다 내 차지가 되고 말았다.

불만이 쌓여가던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기억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쪄 놓은 개떡으로 배를 채웠다. 잠시 후였다. “철컥철컥, 엿 사시오” 하는 외침이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마음보다 행동이 빨랐다. 헌 고무신 두 켤레를 끌어안았다. 헌 신이 사라지면 새 신을 사 줄 것만 같았다. 둘째 동생의 고무신을 신고 골목으로 내달려 엿장수 할아버지를 불렀다. 엿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새 고무신을 갖고 싶은 마음에 신발을 넘겨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당으로 들어서는 찰나 그만 큰 동생에게 들키고 말았다. 엿 한 개를 건네주며 꼭 비밀을 지키라는 다짐을 받았다.

어슴푸레 날이 저물수록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일 나간 할머니가 오실 시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을 다녀온 할머니가 샘가에 앉아 발을 씻으려는데 남동생이 냉큼 이르고 말았다. 그러잖아도 지난여름 언니랑 참외가 먹고 싶어 항아리에서 보리쌀 한 됫박을 자루에 담아 순교네 원두막을 찾은 사건이 있었다. 보리쌀 한 됫박에 참외 여섯 개와 바꿔 언니랑 토광으로 숨어들어 꿀맛 나게 먹던 도중, 큰동생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때도 이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절대 얘기하지 말라는 그 말까지 고자질을 했다. 엄마는 동생에게 거짓말 시킨 벌이라며 매를 들었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나도 새 신발을 사달라며 졸랐다. 할머니는 대야에 물을 채우고는 내일이 장날이니 품값 받은 돈으로 신발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약속대로 내 신발만 사 오셨다. 밤새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내 기억으로 처음 새 고무신을 갖게 된 날이었던 것 같다. 새 신이 발에 맞기까지는 고통이 따랐다. 뒤꿈치 살이 벗겨진 후 굳은살이 박히고 신발이 늘어난 뒤에야 편안해졌다. 여름에는 고무신이 닳을까 봐 자갈이 없는 숲길은 손에 쥐고 맨발로 걸었다.

그 옛날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지만 오래오래 신는 것이다. 요즘처럼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산다는 건 꿈도 못 꿨다. 뒤꿈치에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큰 고무신을 사서 신다가 옆이든 뒤든 어느 한쪽이 갈라지고 바닥이 닳아야 새 신을 가질 수 있었다. 간간이 조무래기들에게 고무신은 그릇도 되었다. 올챙이를 담기도 하고 우렁이도 잡아 담았다. 한길을 걷다 파인 웅덩이에서 미꾸라지도 잡아 깜장 고무신에 넣었다. 때론 냇가로 달려가 배를 띄우며 물장구도 치며 깔깔댔다. 

요즘, 옛것이 부활하고 있다. 영화 ‘오징어 게임’으로 달고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우리가 어릴 적 늘 가까이 접한 것들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었다니 놀랍다. 어릴 적의 놀이, 옷, 신발 등.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게 귀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요즈음 가끔 정장 차림에 꽃고무신을 신고 외출한다. 대개는 내 신발을 못 알아보는데, 어쩌다 알아보고 잘 어울린다며 반색하는 이도 있다. 이제 손자에게 깜장 고무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을 내어 역사박물관도 데려갈 참이다. 내 기억창고의 보물을 꺼내 구수한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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