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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여담] 어쨌거나 덥다 더워박래녀

[한국농어민신문]

입추가 지났는데도 폭염은 계속된다. 불쾌지수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이 더운 여름밤에 폭염보다 더 열 받는 일이 생겼다. 사람의 생명은 촌각을 다투는 일일 수 있다. 상노인일수록 여름나기는 쉽지 않다. 아흔의 시어머님이 열흘이 넘도록 읍내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 온지 사흘만인데 밤 아홉시 경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 춥다고 온몸을 떨떨 떠는데 몸에 열이 펄펄 난다. 얼음찜질로 다스릴 수 있는 경우가 아니다. 부리나케 어머님을 싣고 읍내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갑자기 열이 많이 나서요. 해열제 처방 좀 해 주세요.”

어머님의 상태를 살펴 본 젊은 의사와 간호사는 대뜸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란다. 자기네 병원에서는 응급환자를 검사할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단다. 황당했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끈 후에 인근 도시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갈 테니 해열제만 맞혀 달라고 사정을 했다. 의사는 다른 병일 수도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낫단다. 아예 진료를 거부한다.

‘뭐 이런 병원이 다 있어. 종합병원 응급실이 왜 필요한데. 급한 환자를 봐야 하는 응급실이잖아. 환자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이건 완전 직무 유기잖아.’

화가 났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했다. 꾹 참고 통사정을 했다. 이런 상태로 40분이 넘게 걸리는 근교 도시 병원으로 갈 수가 없으니 응급처치라도 해 달라고. 구십 노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어떻게 그냥 가란 말을 하느냐고. 해열제 주사라도 처방해 주는 게 도리 아니냐고. 의식도 없이 축 쳐져 있는 노인을 보면서도 젊은 의사와 간호사는 눈도 깜짝 않는다. 저런 게 의사라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몸과 마음이 부끄럽지도 않을까.

“그럼 119라도 불러주세요.”
“우리 병원에서 부르면 사설 119밖에 못 불러요. 그러니 집에 가서 119 부르세요.”

도대체 저 인간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인가. 자기 부모 같으면 저런 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교통사고를 당해 생명이 촌각에 달린 환자를 병원에서 안 받아주는 바람에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가 결국에는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구나. 읍내에서 유일하게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러니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겠구나.

시골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응급병원인데. 응급병원에서 중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면 그 병원 응급실이 왜 필요한가. 나태한 시골 종합병원 응급실의 실태가 이 모양인 것이 비단 우리 지역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리라. 어떤 경우에서든 환자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당직 의사가 책임 떠넘기기, 발 빼기에 익숙한 것이 이 사회의 단면 아닐까.

그러나 의사와 옥신각신 할 틈이 없었다. 119에 전화를 해 놓고 집으로 달렸다. 집 앞에서119 구급차를 기다렸다. 그 사이 시어머님은 하얗게 의식을 잃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발목이 부실한 나는 밤길 운전도 장거리 운전도 도무지 자신이 없다. 환자를 승용차 뒷좌석에서 시누이와 농부가 부축을 한 상태지만 저러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덜컥 겁부터 났다. 남들은 말하기 쉽게 구십 노인이 돌아가시면 짐 하나 더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아니다. 막상 의식불명이 되어가는 부모를 보면 자식은 포기보다 살리려는 쪽이다.

119 구급차와 응급요원은 즉시 달려왔다. 시어머님을 침상에 편안하게 누이고 농부가 보호자로 따라갔다. 사실 농부가 운전을 못한 것은 술이 화근이었다. 폭염으로 푹푹 찌는 날씨였다. 오후 내내 감산에서 땀 흘리다 온 농부는 저녁 밥상에서 반주를 제법 마셨다. 갈증 해소용 맥주를 두어 병 마셨으니 어찌 운전대를 잡겠는가. 결국 119 구급차를 불러 안전하게 시어머님을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차라리 읍내 종합병원 의사에게 환자를 맡기는 것보다 안심이 된다. 시골 종합병원에 온 의사들 몽땅 돌팔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실력이 없으니 응급환자를 무서워하는 거지. 우리 읍내 종합병원 의사는 실력이 완전 꽝인 돌팔이 아닐까. 환자 진료도 못하면서 봉급만 받아 챙기는 돈충이 아닐까. 덥다 더워.

어쨌든 울 시어머님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한기를 다스리고 나는 병원 의자에서 밤샘을 할 농부를 생각한다. 상노인이 춥다는 이 더위도 며칠 안 남았나보다. 말복에 이어 처서 지나면 폭염도 그리울 게야. 상노인은 오한으로 떨떨 떨어도 저승길 역시 쉽지 않을 게고.

/박래녀
전원생활체험수기공모 대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제 8회 여수해양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현대시문학 시 등단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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